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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술을 음미하며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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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3  22: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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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잠이 든 조용한 시간이다.

독서를 하다말고 냉장고를 열어본다. 한 귀퉁이에 시원한 맥주가 있다. 인어의 형상을 한 크리스털 잔에 거품 가득한 맥주가 넘쳐 오른다. TV를 켜며 나 홀로 한 잔의 술을 음미하기 시작한다. 이 또한 하루의 일과 중에 빼놓을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다.

내가 언제부터 술을 알았고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던가. 두 번째 잔을 기울이며 오늘은 문득 술과의 인연을 회상해본다. 중학교 2학년 무렵, 나는 큰 누나를 통해 박인환의 詩 『목마와 숙녀』를 알게 되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

첫 행에서 ‘한 잔의 술’이라는 표현이 너무도 멋지게 느껴졌다.

그러나 술을 마실 수 없는 중학생이었기에 상상으로만 그쳤다. 하지만, 이 詩로 인해 처음으로 술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였던 기억이다.

그간에는 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강했었다. 그 부정적인 기억은 아버지를 통해서였다. 건축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인부들과 함께 술에 취한 적이 많았다. 평소엔 말 수가 적고 점잖은 편인 아버지였지만 술에 취하면 큰소리를 지르고 말이 많아지는 편이었다. 술에 취해 집으로 오시면 빨리 잠이 들지 않고 어머니와 다투는 횟수도 많았다. 가끔은 가정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어린 남매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아버지의 훈시를 들어야만 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도 싫었다. 평소엔 그렇게 좋으시던 아버지가 취하면 증오스러워지는 이유가 술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평생토록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작정을 하였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술에 대한 낭만을 나에게서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잠시 하숙을 하게 되었었다. 그 하숙집은 장교들이 주로 숙식을 하는 집이었다. 당시의 광주에는 대한민국 장교라면 반드시 교육 훈련 상 거쳐 가는 상무대(尙武臺)라는 군 교육 부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숙집에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장교와 ROTC 출신의 장교가 있었다. 그런데 군인 월급날이 되면 같은 출신끼리만 외출을 하여 술을 마시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 사실이 궁금해서 하루는 ROTC 장교들의 술좌석에 따라가게 되었다. 그러나 장교들은 내가 궁금해 하는 사실들을 말해주기는커녕 억지로 생맥주를 마시게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장교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들에 점차 흥미가 느껴졌다. 특히 충청도의 C 대학교를 졸업한 ROTC 출신 장교가 있었는데, 이 장교는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장교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맥주잔이 한 잔 두 잔 비워지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서서히 호프의 참맛이라는 맥주의 맛을 알게 되었다. 진정 술을 좋아하게 된 배경 중의 하나는 당나라의 시선 이백(李太白)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백은 “석 잔의 술을 마시면 노장의 이른바 무위자연의 대도를 깨우칠 수 있고, 한 말의 술을 마시면 자연의 섭리, 그 핵심과 합치가 된다.”라고 하였다. 술의 취기가 오르면 왠지 센티멘털해지고 철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는 무렵에 알게 된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其一)』은 과히 술을 마시는 진수를 알게 하는 것 같았다. 지금도 취기가 오르면 가끔 월하독작(月下獨酌其二)이라는 詩를 콧노래처럼 흥얼거리게 된다.

꽃 사이에 앉아

혼자 마시자니

달이 찾아와

그림자까지 셋이 됐다

달도 그림자도

술이야 못 마셔도

그들 더불어

이 봄밤 즐기리

내가 노래하면

달도 하늘을 서성거리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춘다.

이리 함께 놀다가

취하면 서로 헤어진다.

그간에 내가 갖고 있던 술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인 요소가 강했지만, 이백의 詩를 알고 나서는 술에 대한 멋스러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술을 사랑하게 되었다. 대신 몇 가지 주도 원칙(酒道 原則)을 정했다.

술을 마시면 절대 남에게 혐오감 있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과음하지 않고, 정신과 육체를 주체할 정도까지만 즐겁게 마시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이 원칙은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잘 지키고 있는 편이다. 술에는 장사(壯士)가 없다고 하였다. 술은 취하기 위해서 마신다지만 많이 마시면 취하게 되고, 취하게 되면 감정의 자제가 힘들어 진다. 감정의 자제가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마시는 술은 순간적으로는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모르지만 다음날 육체의 피로와 정신적인 후회가 동반될 수 있다. 술은 남녀를 불문하고 너무 시끄럽지 않고 의연하게 마시는 사람이 참 보기 좋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력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말이 되면 술좌석은 더 많아진다. 과음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술좌석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정하는 주도 원칙에 따라 술에 먹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하루도 저물었다. 이제 정리와 휴식의 시간이다. 한 잔의 술을 음미하기 위해 나 홀로 독작(獨酌)의 건배를 외친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와 내일의 희망을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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