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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은 그 후 어찌 살았을까?오길순
김정민 기자  |  elo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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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5  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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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이나 한적한 산길을 지날 때 그 길옆에서 만난 개여울 속의 내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다. 미지의 세계에서 온 이방인인 듯, 멀리 떠난 친구가 바라보는 듯, 잔물결에 어렴풋이 비추이는 얼굴은 소롯이 슬픔을 던져주기도 한다. 특히 단풍 드는 가을 산이거나 흰 눈이 덮인 나목사이를 지나노라면 나뭇잎 사근대는 소리며 바람에 부딪치는 잔가지 음향이 물 메아리와 어울려 더욱 애상을 열어준다. 그

럴 때마다 나지막한 음조로 읊조려지는 노래가 있다. ‘앞산과 시내는 예같이 푸르고 하늘은 맑은데 바람은 우수수, 오라 오오라 내 동무여...’ 산수화처럼 맑은 영상을 제공하는 가사와 함께 흐느낌처럼 처연한 가락의 호소력은 떠올림만으로도 상념의 세계로 몰아넣는 가곡이다. 무척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동급생이었지만 선배처럼 의젓한 그 애는 작은 키에 몸집이 아담한 문학소녀였다. 중학교 이 학년인가 삼 학년 때 짝꿍이었다. 글씨를 예쁘게 쓰고 음악상식이 풍부하고, 무엇보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정겹고 해맑은 친구였다. 글씨체도 그녀를 닮아갔다. 잔잔한 듯 부드러운 그녀의 글씨체와 강한 듯 씩씩한 내 글씨체는 친구들이 주인을 모를 만큼 비슷한 궁체로 닮아갔다. 더욱이 그림과 함께 꾸민 시집처럼 예쁘던 그녀의 공책은 그녀를 닮고 싶은 내 맘을 더욱 절절하게 했다.

나를 음악세계로 마음을 들여놓게 한 사람도 실은 그녀였다. 요한슈트라우스니 차이코프스키니 문화에 뒤떨어진 촌 가시나에게 듣지도 못한 음악가와 봄의 소리왈츠니 안단테칸타빌레니 거침없이 제목을 얘기할 때, 목마른 듯 라디오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음악이라면 유행가 정도 들었을까, 교과서 외에는 모르는 내게 그녀의 넓은 음악세계에 대한 부끄러움은 하나 둘 귀를 열어 음악이라는 바다에 발을 적시게 했다. 뒤늦게 음악교육에 편입해 음악이론을 공부하면서 손 더딘 피아노를 두드리면서 그 애가 들려준 음악가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일찍이 조숙했던 그녀를 떠올리곤 했다. 그녀의 모든 것이 멋져 보였다. 굵직한 음성에 살포시 짓는 미소도 좋았고 가늘게 작은 눈도 예뻐 보였다. 드문드문 들려주는 성경구절도 새롭고 어디서 났는지 시구나 격언 한 마디도 새로웠다. 범사에 감사하라.

겨울이 가면 봄은 멀지 않았느니. 생각하라! 그러면 너는 알 것이다 등, 세상에 눈 떠가는 내게 들려준 구절들은 생각과 행동의 지침으로 손색이 없었고 그녀가 그러하듯이 스케치북이나 노트의 겉장을 열어 써넣고는 삽화로 배경을 그려 넣으면 근사한 한 폭의 시화가 되었다. 때로는 차 한 잔의 그림도 그려지고 한 쌍의 사슴도 뛰놀고 외딴 초가집의 쓸쓸한 풍경도 채색되어 공책의 여백마다 어우러진 시구와 그림은 아련한 시상까지 떠오르게 했었다. 훗날 시인의 이름이 낯설지 않게 입문하면서 문학에 마음이 일찍 트였던 그녀를 기억했다.

여고와 대학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풍요로운 그녀의 심성은 친구들을 편안하게 했다. 여자 친구는 물론 남자친구들도 맴을 돌았다. 그래서였는지 그녀의 얼굴에선 만족한 듯 넉넉한 표정과 비밀스런 분위기까지 포함한 미소가 번지곤 했다. 친구들은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했지만 그녀의 세련된 포용력은 내 보기에 정감이 넘쳤다. 사실 그녀는 초등학교 때의 담임인 총각선생과 성숙된 사랑을 하고 있었다. 사제 간의 관계가 이성으로 바뀌어 총각선생에게 대학 입학까지 기다림을 안겼다.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맴돌던 남자친구들을 조용히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사랑받은 자의 너그러움과 단호함이었을 것이다. “우리 속물이 되지 말자.” 대학시절 그녀가 내게 말없이 건네준 쪽지의 의미는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었기에 못 다한 말을 내밀한 메시지로 남긴 것이었으리라. 졸업을 하고 교사 발령을 받은 그 해 끝 무렵, 그녀에게 보낸 나의 크리스마스카드가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왔을 때도 우편실수려니 했다.

한 달 전 귀향길에 동행했었는데 웬 수취인 불명이야?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마음 속 예감은 단순한 의문으로 스쳤을 뿐이다. 일요일 밤, 그녀는 근무하던 학교 옆 자취방으로 귀가하다 사라진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버스를 타고 개울을 건넌 후 뽕밭 길 어디에선가 증발한 것이었다. 신문에 난 작은 활자의 기사는 꿈결처럼 감감했다. 그녀는 타살된 것이었다. 불량배의 순간의 범행대상이 된 것이었다. 만돌린을 잘 켜던, 속물을 거부하며 사랑을 키우던 그녀가 그렇게 속절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대로 살았으면 지금쯤 마음 고운 여인네로 좋은 아내로 그리고 내가 어려울 때 조언해 줄 지혜로운 친구로 남았으련만 스물세 살 십일월을 끝으로 떠나버린 야속한 친구. 이듬해 정월, 친구들과 묘비도 없이 묻힌 그녀의 무덤가, 바늘쌈 같은 눈보라 속, 흰 눈을 소복이 이고 누워 있는 그녀의 영원한 쉼터 앞에서 부른 노래 ‘오라’는 그녀를 향한 나의 애절한 눈물이었다. “......목동은 밭 갈고 처녀는 베 짜서 기쁘게 살도록 오라 오라 오라 아아아아 오라 앞산의 초동과 베 짜던 처녀여, 어디로 가느냐, 눈물을 흘리며 오라 오라 오오라 내 사랑아.” 처녀와 베를 짜자 약속했던 목동의 그녀를 향한 사랑 열병 소식이 바람결에 들려올 때마다 제발 그가 현실의 그림자를 밟기를 기원하면서 친구들은 두루 괜찮았던 가시나의 짧은 사랑 이야기를 아프게 추억했었다. 목동은 그 후 어찌 살았을까?

약력

수필가, 시인, 동화구연가. 국제펜 한국본부이사, 한국문협 이사,

월간 『한국산문』 문학회장 및 창간호 편집장, 강남문협 상임이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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