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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걷는다서장원
김정민 기자  |  elo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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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17  2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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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이 티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하다. 가볍게 바람도 분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집 뒤에 있는 자그마한 동산을 오른다. 산이라기에는 좀 낯간지럽고 언덕마루라 해도 좋겠다. 내 몸 상태는 때마다 산자락만큼이나 들쑥날쑥이다. 오늘은 좀 가벼운 편이다. 길을 나서서 첫 번째 마주치는 오르막을 힘들게 오르면 곧바로 숲이 나온다. 숲속을 걷다보면 청정한 공기가 가슴 속을 맑게 헹구어 준다. 푸른 수풀을 눈에 담으면서 심호흡을 한다. 평일 한낮인데도 오가는 사람들과 심심찮게 마주친다. 저만치 다리를 저는 이가 간다. 오다가다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이다. 걷는 자세로 봐서 뇌경색 같은 성인병을 겪었던지 아니면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지 않았나 싶다. 퍽 힘들겠다는 생각에 연민이 스친다. 나 역시 몹시 힘들긴 해도 사지가 멀쩡하니 장차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지만 저 사람은 그런 꿈은 꾸기도 어렵지 않을까 싶어 안쓰럽다. 그와 점점 거리가 좁혀졌다. 대여섯 걸음 뒤에서 인기척을 냈다. 그가 한옆으로 비켜섰다. 옆을 지나치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한적한 산길을 가다가 뒤에서 기척이 나면 흠칫 놀라면서 돌아보게 된다. 심약한 탓인지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내 느낌을 생각해서 인기척을 냈고 그냥 지나치는 게 무엇 해서 가볍게 인사말을 건넸다. 나는 이 언덕길 걷기를 간혹 빼먹을 때도 있지만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걷는 것 같다. 그나마 체력을 유지하려면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하리라.

며칠 전 길섶 수풀 속에 오래 버려두어 묵정밭이 돼버린 곳이 엉성하게나마 벌초가 돼 있는 걸 봤다. 무덤이 있으리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여름 내내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단장한 묘는 그런대로 모양을 갖추고 있다. 추석 명절이 가까워지면서 후손도 자신의 뿌리를 내팽개칠 수는 없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몇 걸음 더 걷다보니 깔끔하게 벌초 된 산소도 있다. 제법 규모가 있고 반듯하니 비석까지 서있는 묘지다.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원시인류는 돌연변이에 의해 현생인류로 진화를 거듭했다는 과학적 근거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 조상은 유럽으로, 중앙아시아로, 북남미로 흘러갔고 그 중 한 지류(支流)가 한반도까지 스며들었다. 그렇게 셀 수 없는 세월 동안 태어남과 죽음이 이어져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저 무덤 속의 주검도 한때는 이승에서 자랑스러운 삶을 꾸리지 않았을까. 그 무덤 옆을 지나는데 환청인 듯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것 같다.

‘열심히 걸으시구려. 못 걸으면 그날로 끝이라오.’

결국 우리의 삶은 ‘걷기’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걷지 못하게 되었을 때 우리의 삶은 끝맺음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신생아가 태어나서 네 발로 기다가 돌 무렵이면 걸음마를 시작한다. 갓 태어났을 때의 그 모습을 상기해 보자. 손가락을 대기만 해도 터질 것만 같은 가냘픈 생명체는 하루가 다르게 우리를 환희에 휩싸이게 한다. 그러다가 ‘따루따루’을 하고 어느 순간 ‘걸음마’를 한다. 그 감격(?)을 겪어본 이라면 누구나 벅찬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다.

‘걷는다’는 것이 다 같을 수는 없다. 세상 사람들에게 걷기의 명소로 널리 알려진 곳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대표적이 아닐까 싶다. 한 달 동안 800km가 넘는 먼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갈고 닦는 수행의 도정이다. 그런가 하면 ‘세계의 지붕’이라는 에베레스트 설산에 오르는 그 험난한 등정도 결국은 한걸음을 떼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 또한 ‘걷기’의 상징이며 두 발로 걷지 않고는 불가능한 여정이다. 이들의 걸음을 위대한 선지자들의 발걸음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면서 발걸음을 내디딘다. 몇 군데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친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등판에서 뜨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살아있고 걸을 수 있어서 느끼는 기쁨이다. 평소 다니던 목적지까지 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되돌아 걷는다. 오가는 등산객이 제법 많이 눈에 띈다. 사색의 나래를 접고 주변을 살펴본다. 중년 남녀가 무척 다정한 표정으로 소곤거리면 지나친다. 뒤 따라오는 중노인이 활기 찬 걸음으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지나간다. 다들 건강한 얼굴에 편안함이 배어있다. ‘걷기’가 안겨주는 행복이 아니겠는가.

내 사정을 아는 지인들은 하나 같이 많이 걷기를 권한다. 예전에는 테니스를 치기도 하고 병마가 덮치기 전에는 탁구를 즐겼었다. 또 종종 친구들과 어울려 등산다운 등산도 했었다. 이제는 체력이 부쳐서 딱히 달리 할 수 있는 운동도 없는 형편이다. 모든 것이 아예 ‘꿈’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걷기만이 나의 유일한 활력소다.

약력

2015년 수필집'설송을 기리다(2016년 세종도서로 선정)' 에세이문학작가회 감사,

강남문인협회 회원, 느티나무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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