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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통령 선거 최종 개표 결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득표수 1,577만3,128표와 득표율 51.6%를 얻으며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첫 과반 득표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위 문재인(48.02%, 1,469만2,632표) 후보와는 1,080,496표 차이가 났다.
이번 대선의 투표율은 75.8%였다. 이는 지난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회창 후보가 맞붙은 16대 대선 투표율보다 5%포인트 높고, 17대 대선보다는 12%포인트 이상 높다.
이 같은 투표율의 상승은 이번 대선이 각 진영의 세 결집을 통한 초박빙의 양자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투표로 승부가 갈릴 수 있다는 판단이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렀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후보의 사퇴로 이번 선거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후 첫 보수 진영과 진보·개혁 진영의 1대 1 대결로 치러진 점도 투표율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이번 대선에서는 투표율이 높으면 진보 세력에게 유리하다는 통념이 깨졌다.
박 당선인은 전국 시·도별 개표 결과에서 서울과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했다. 수도권 중 경기·인천, 고향인 대구·경북, 부산·경남, 대전·충남·충북, 강원, 제주에서 모두 문재인 후보를 앞섰다. 야당의 강세 지역인 호남에서는 문 후보가 광주(92.0%), 전남(89.3%), 전북(86.3%)을 석권했지만 박 당선인도 33만6,185표를 얻어 최종 득표율 10.5%라는 호남 두 자릿수 득표율 기록을 세웠다. 호남에서 문 후보에게 250만6,221표를 뒤졌지만 영남에서 313만여 표 차이를 낸 게 승리의 원인이었다.
최대 격전지는 수도권이었다. 서울에서는 문 후보가 3.2%포인트(20만3,067표) 차로 앞섰지만 박 당선인은 인천에서 3.5%포인트(5만8387표), 경기에서 1.2%포인트(8만6831표) 차로 승리했다. 그리고 유권자 수가 서울의 7분의 1인 강원에서 서울 표차보다 많은 22만2,006표(24.4%포인트) 차이로 대승하고, 대전·충남·충북에서도 28만3,099표 차를 내면서 전국 승리를 확정지었다.
민주통합당 측이 출구조사 이후 막판 역전을 기대했던 부재자 투표에서도 문 후보는 52.1%로 박 당선인(46.9%)을 앞섰으나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2002년 16대 대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재자 투표에서 64.1%를 득표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30.6%)에게 33.5%포인트(26만3354표)를 앞섰다. 이번엔 박 당선인이 격차를 5만 표(5.2%포인트) 차이로 줄인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2007년 정상회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여부가 막판 대선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부재자의 절반이 넘는 20대 군인·경찰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상 처음 도입된 재외국민 투표의 경우 해외 영주권자들이 보수성향이 강해 새누리당에 유리할 것이란 분석이 있었지만 18대 대선 결과(문 후보 56.7%, 박 당선인 42.8%)는 예상과 달랐다. 주재국 공관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 투표의 어려움 때문에 20~40대 유학생·주재원 등 일시 국외체류자가 주로 투표에 참여하면서 첫 재외국민 투표에선 야성(野性)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
또한 세대별 투표율은 대선 투표의 방송 3사 출구 조사 결과, 50대 투표율은 89.9%로 연령별 투표율 1위를 차지했다. 또한 60대 투표율 역시 78.8%로 2위를 차지하며 5060세대의 투표 참여가 다른 층에 비해 높았다.
20대와 30대의 경우 65.2%, 72.5%에 그치며 상대적으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 같은 세대별 투표율은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율 차이로 나타났다. 박근혜 후보는 20대 지지율 33.7%, 30대 지지율 33.1%로 문재인 후보가 얻은 65.8%와 33.4%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였다.
하지만 50대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62.5%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37.4%의 문 후보를 25.1%포인트 차로 앞섰다. 더불어 60대의 지지율에서도 44.8%포인트까지 벌어지며 5060세대에서 당락이 결정됐다는 평을 받았다. < 저작권자 © 강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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