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광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 전보건복지부 장관 / 자유기업원

기업인 정치인 그리고 관료를 두고 우리 사회에 누가 더 크게 공헌하는 지에 대해 순서를 매기라면 어떻게 나올까? 한 가지 결론은 확실한 것 같다. 답변하는 사람이 기업인 정치인 관료 중 어느 특정 집단에 속할 경우 그는 분명히 자신이 속한 집단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회에 가장 크게 기여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세 집단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제3자가 평가하는 경우 그 순서가 어떻게 매겨질까? 필자의 결론은 기업인이 먼저이고 한참 뒤로 처져서 정치인과 관료가 그 다음이고 정치인과 관료 중 어느 집단의 공헌도가 높은지(아니면 해악도가 높은지)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전에도 그러했던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경제 위기, 유가 폭등, 물가 상승, 청년실업 증대, 양극화 등으로 각계각층의 삶이 힘들게 되자 재벌과 대기업 때리기가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좌파 정치인과 진보 학자야 늘상 그래 왔지만 최근엔 일부 우파 논객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기업인이 사업하기가 그리고 처신하기가 요즈음처럼 어려운 때가 없는 것 같다.

일자리 창출을 하지 않는 것, 양극화를 야기하는 것, 재래시장을 짓밟는 것, 중소기업을 후려치며 동반성장을 하지 않는 것 등 우리 사회 만악(萬惡)의 대부분이 기업인 특히 대기업, 재벌관련 기업인의 탓이란다. 동네북 신세인 자신들의 처지를 놓고 많은 기업인들이 한탄하고 있을 것이며 정말 기업할 의욕이 속되게 말하여 밥맛일 것이다.

기업인은 고객인 소비자가 외면하면 하루아침에 망한다. 소비자가 자신이 지불하는 가격과 그 대가로 받는 서비스를 언제나 저울질하기에 기업가는 싼 가격에 최선의 서비스 제공에 심혈을 기울이며 소비자가 어떤 횡포를 부려도 언제나 미소로서 대한다.

기업인은 항시 경쟁 속에서 체력이 단련된다. 독과점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의 경우 경쟁이 없지 않느냐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독점기업도 항시 새로운 진입자의 위협 속에 있으며 특히 오늘날과 같이 국경 없는 범지구화 시대에는 국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더라도 해외로부터의 거센 경쟁은 정말 기업인들로 하여금 처절하게 투쟁하게 하며 그 결과 살아남는 기업은 대단한 저력을 갖고 있다. 기업의 세계는 냉엄하여 기술, 자금, 판매, 인사 등 어느 한 구석이라도 허점이 있으면 부도 도산이라는 처절한 결과로 귀착된다.

정치인과 관료는 어떤가? 물론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선거를 치르고 당선 후에도 주민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관료가 되기 위해서는 경쟁률이 매우 높은 시험도 치르며 승진을 하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정치인과 관료는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보스나 상급자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일상의 생활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예산과 결정권의 크기에 따라 관련자들의 섬김을 받는다. 큰 잘못을 하여도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퇴출이 되지 않는다. 상당수의 정치인과 관료 특히 고위직의 경우는 퇴직 후에도 높은 보수의 자리를 꿰차고 잘 나간다.

관료와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정책과 서비스는 불량품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매일 봇물처럼 쏟아 내는 정책의 대부분도 함량미달의 불량품이거나 재탕삼탕한 것이어서 생선으로 치면 잡은 지 며칠이 지나 선도(鮮度)가 크게 떨어져 국민이 외면하는 것이고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는 것들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관료와 정치인은 자신들의 실수와 실책의 결과인 불량품을 깨닫기보다는 많은 경우 잘하는 기업인들을 닦달하거나 속죄양으로 삼아 사태를 개선하기는커녕 더 악화시키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 하나만 놓고 봐도 정치인과 관료는 자신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은채 기업인들을 손보아야 할 대상으로 비난하며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하여 관료와 정치인은 자신들의 제한된 정보에 의거, 승자와 패자를 대부분 결정하면서 동시에 기업의 자발적인 노력만으로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은데 이것이 바로 근본적으로 잘못된 판단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과 관료의 제대로 된 역할은 현행 제도 중 기업인들이 경제 원리에 따라 행동할 수 없도록 하는 각종 잘못된 법과 제도를 찾아내어 이를 제대로 정비해 주는 것이다. 신호등이 설치되지 않은 사거리에서 교통은 막히게 마련이다. 정치인이나 관료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해야 하는 일은 사거리에 신호등을 설치하는 것이지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서로 얽힌 차들의 운전자들을 야단치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번 설치된 신호등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항시 살피는 것이 정치가와 관료가 해야 할 일이다.

정치인과 관료는 국민과의 관계에서 기본적으로 국민의 대리인 즉 머슴이다. 머슴인 정치인과 관료는 원칙적으로 자신의 이해를 떠나 주인인 국민만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머슴에 불과한 관료와 정치인이 주인인 기업인 위에 군림하려는 데 있다. 많은 경우 머슴이 주인의 의사에 반하게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관료와 정치인은 자신들은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서 여건의 변화에 민첩하게 변화하는 기업인을 호통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 사회의 개혁대상 제1호가 관료와 정치인이라는 사실은 공감대가 형성된 지 오래이다.

국가 경쟁력 또는 성장 잠재력과 관련한 국내외 기관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치인 또는 관료 그리 그들이 만든 제도와 정책이 문제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반해 기업과 기업인들은 언제나 상당한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못하는 집단이 잘하는 집단을 호통치는 코미디가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정치인과 관료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사용되어야 하지 가계나 기업의 일상적 생활과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것이 힘의 용도가 아니다. 힘의 사용이 제대로 되려면 그 과정에 견제와 경쟁이 있으면 된다. 정치인과 관료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대부분은 독점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이기에 애초부터 경쟁이 없으며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상호 견제하면 오류가 상당 수준 줄어들고 불량품이 퇴출될 수 있을 터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세 부가 한 통속으로 놀기에 견제는 애시 당초 기대하기 힘들다.

견제하고 감독하라고 설치한 기관들도 한 통속으로 유착하여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거나 불량품 생산을 방조하고 있다. 수많은 위원회에서 혈세를 들여 작성되는 것은 탁상놀음의 로드맵이고 말의 유희와 성찬(盛饌)이 대부분이다.

요즈음의 경제정책은 병 주고 약 주는 식이다. 균형발전의 미명으로 각종 개발계획을 쏟아내고 계속 낮은 금리를 유지하면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단다. 기업의 자율성을 제약하면서 경기를 부양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겠단다. 평준화를 강조하면서 세계 일류가 되겠단다. 기업을 옥죄면서 고용을 창출하란다. 정부 스스로 만인에 대한 싸움을 걸면서 소비자와 기업가의 심리안정을 기대한단다.

재벌이 왜 재벌이 되고 대기업이 왜 대기업이 되었는가? 관료와 정치가 같이 거드름을 피고 위세를 부려서 그렇게 되었는가? 아님 근로자, 중소기업가, 납품업자를 착취하여 그렇게 되었는가? 거드름 피고 위세 부리고 착취한 일이 없다. 그러한 일이 없고 그러할 수도 없다. 대기업과 재벌이 오늘의 위치에 오른 것은 그들이 영위하는 산업과 그들이 봉사하는 전 세계 고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그렇게 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된 것이 정부가 주는 특혜 때문이라면 중소기업이 더 잘되어 있어야 한다.

재벌과 대기업이 오늘의 위치에 오른 것은 고객들에게 경쟁자들보다 더 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더 싼 가격에 공급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외면하면 하루 아침에 망하는 것이 기업이다. 정치가와 관료도 기업이 고객에게 봉사하듯 국민과 기업인에게 봉사해야 한다. 고객이 외면하는 기업은 퇴출로 직결되는데도 국민이 외면하는 정치가와 관료는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서 문제없는 기업, 잘하는 기업을 문제시하고 시비한다.

5월 16일 이명박 대통령께서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은 실적위주로 하는 데 실적 위주는 남의 희생을 유발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뜻한 경쟁이 아니라 살벌한, 냉혹한 경쟁이 될 수 있다”라고 하셨다. 다음날인 17일 정운찬 전 총리는 “실적 위주의 대기업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말씀들이다.

정 전총리야 상아탑의 서생 출신이라 그렇다 하더라도 국내 유수 대기업의 회장을 지냈던 대통령께서 실적 위주의 경영이 잘못된 것이라니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기업이든, 국가든, 관료조직이든 모든 조직의 장이 그 조직에 부여된 업무의 실적을 올리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한단 말인가? 인식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정치인 문화이고 관료 문화이다.

제발 남을 탓하지 말고 자기 일을 잘 하자.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뒤진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상대적으로 정치가와 관료와 관련된 것이지 대기업이나 재벌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대기업이나 재벌이 무결(無缺)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가나 관료가 작금에 질책하는 부분을 두고는 재벌과 대기업이 크게 잘못하는 것이 없다. 정치가와 관료는 좋은 정책으로 국민에게 봉사하고 기업은 전 세계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싸고 질 좋은 상품으로 봉사하는 봉사의 경쟁을 벌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