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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자와 미군 장교(13번 임신한 여인)
대한의사협회 고문 이병훈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할 때 많은 공을 들인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을 구별하는 눈, 즐거운 음악소리를 듣고 감동하는 귀, 은은한 향기를 맡는 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모든 사람에게 감명을 줄 수 있게 말하는 입 또한 정성들여 만들었다.
그러나 조물주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인간이 신체의 어느 부분을 남에게 이식해 주어진 생명을 연장 시키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란 사실을.
1975년 순천향병원에 근무할 때 산부인과 조과장이 찾아왔다.
“이과장 교환수혈 해봤어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아주 드문 산모가 있어요. 결혼한 지 10년 동안 12번의 유산이나 사산을 했고, 이번에 13번째 임신인데 Rh-라 어렵지요.”
산모는 올해 32세로 아이에 대한 희망과 함께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었다.
“산모와 아이는 [Rh 부적합증]입니다. 산모가 Rh-고 태아가 Rh+일 때 서로 피가 맞지 않아 태아의 적혈구가 파괴돼 빈혈과 황달이 심해지는 ‘핵황달’이 발생합니다. 이것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출생 즉시 아기의 피를 모두 바꾸어 넣는 교환수혈이 필요하지요.”라고 시술과정을 설명했다.
출생 후 1차 교환수혈을 한 후 아기는 3일후 상태가 악화돼 다시 긴급 수혈이 필요하게 됐다.
필자는 국내 각 TV방송국과 미군 TV방송국에 Rh-혈액형의 헌혈자를 찾기 위해 급히 방송을 요청했다. 이런 긴급한 사실이 전파를 타고 얼마 되지 않아 두 명의 미국인에게 연락이 왔다. 한사람은 병원 근처에 사는 미군 사병이었고, 또 한사람은 동두천에서 근무하는 미군 장교였다. 장교는 헬리콥터를 타고 병원에 도착해 헌혈을 했다. 아기는 2차 교환수혈을 신속히 받아 생명을 구하게 됐다. 아기엄마는 아기이름을 순천향병원에서 기적적으로 태어났다고 해 ‘순천’이라고 지었다.
아기가 5살 때 병원에 건강진단을 받으러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아기를 업고 가는 여자를 보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또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이 나오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다 나올 때까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쳐다보곤 했지요. 아마 누가 봤으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 후 이 아기엄마는 국내의 Rh- 단체에 가입해 헌혈을 하며 돕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Rh-인 사람들의 분포는 백인이 15%, 흑인 5%가 되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주 드물어서 0.3% 정도라 한다.
지난 10월 말에 전화가 왔다.
“저 이순천인데요. 박사님 안녕하세요?”
“잘 있었다네. 자네 결혼식 주례를 한 후 연락을 못했었네. 그런데 얼마 전 당신 태어날 때 긴급수혈을 해준 미군 드로즈 중위가 일부러 순천향병원을 찾아와서 자네를 만나 보겠다고 찾았다네. 나한테 연락이 와서 당신에게 연락을 했었는데 연락이 안되더군. 당신한테 긴급수혈을 해주려고 동두천에서 일부러 급히 헬기를 타고 온 고마운 분인데. 연락한번 드리게나. 자네 이제 몇 살인가?
“저는 39살에 됐어요.”
“세월 참 빠르네.”
순천이는 중고등학교 때 운동선수로 활약했고, 태권도 3단, 유도는 고단자로 전국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건강하게 자랐다.
미국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 순천이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미국 사람이 보여준 운전 면허증 뒷면에는 ‘내가 사망하면 나의 신체를 모두 원하는 사람에게 지원해 바치겠다’라는 개인 서약이 기재돼 있는 것을 보았다.
자연 과학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불가능하던 귀중한 생명이 태어나게 됐으며, 사랑의 헌혈과 장기기증 등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환자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됐다. 헌신적인 사랑과 봉사활동은 인류 역사에 영원히 더욱더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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