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행복하다

이승훈

자정 녘 고속버스가 은은(殷殷)하게 어둠을 가른다.

선배가 주선한 모임이 늦게 끝나 부랴부랴 심야고속버스를 탔다. 어김없이 찾아온 ‘수능추위’를 맞고 보니 시골 노모를 향한 마음이 조급해진 탓이다. 노모가 시골 생활을 고집하고부터 나에게 겨울은 떠나지 못한 여행처럼 애틋한 계절이 되었다. 주말 동안 내려가서 겨울을 얼마나 챙길까마는, 집 안팎으로 구석구석 눈여겨봐두어야 나중에라도 무엇이 필요한지 불현듯 생각날 것이다.

새벽 4시경 순천에 도착이니, 시내버스가 다니기 전의 어중간한 시간이다.

심야고속을 타기 전부터 이미 숙면을 취하고 잇을 터여서 노모에게 내려간다는 전화를 미처 하지 못하였다. 최대한 얼쩡거려 노모가 일어날 시간에 맞춰 들어가려 해도 으슬으슬한 새벽 공기가 움츠린 몸을 자꾸 떠밀었다. 불쑥 들어간 노모의 곤한 잠을 깨워야 하는 짓보다 홀로 주무시는 노모를 놀라게 할까 봐 끌탕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 현관문을 두드리니 역시 기척이 없다. 안방에는 수면등 삼아 켜둔 스탠드 불빛이 노모의 머리맡 창호지에서 두 손 모으듯 고요하게 비추고 있다. 호박만 하게 드러난 창호지의 처연한 불빛이 새벽 공기처럼 가슴을 알싸하게 한다. 마치 거기 외딴섬 하나 떠 있는 듯하다.

현관문을 두드리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 나는 문 두드리기를 얼른 멈췄다.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듯 영롱한 눈썹달을 하늘 가득히 에워싼 별들, 하마터면 탄성을 지를 뻔하였다. 적어도 이틀 밤은 저 별들로 육안(肉眼)은 물론이요, 심안이며 영안조차 흠뻑 적실 것을 생각하니, 노모도 노모려니와 여기서 지낼 몇 시간에 벌써 가슴이 설렌다.

무심결에 노모가 기척을 느꼈던지 누구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깜짝 놀라는 노모에게 기별 없이 내려온 인사를 허둥대며 하고는, 노모가 방으로 들어가는 사이 얼른 다시 마당으로 물러나와 별 천지의 새벽하늘을 헤집고 다녔다.

노모가 꺼내준 솜이불을 깊이 끌어올려 눈을 감았다. 오랫동안 비었던 곳이라 방 안 공기가 조금은 싸늘하지만, 나무 흙집에서 우러나오는 토향(土香) 섞인 향기가, 지친 영혼의 ‘아로마 테라피’처럼 금세 잠을 불러들인다.

얼마쯤 잤을까. 마른 콩깍지가 타는지, 톡톡 튀는 불땀 센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노모가 새벽잠을 거둔 채 군불을 지피는 모양이다. 방안 그윽하게 배어든 연기 냄새가 설핏 깬 잠을 다시 다독인다. 솜이불 속에서 현기증이 일만큼 따스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바로 어머니의 품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리웠던 당신의 품이 이른 아침 나를 감싸는 것이다. 지천명의 중반을 넘어서면서도 여전히 갈등을 느끼며 그리워하는 품이다.

노모는 어쩌다가 형이 도회지에서 내려오면 끼니때마다 생일상 같은 밥상을 차렸다. 그리고 온종일 말이 없다가 형이 잠이 들면 슬며시 다가가 이불을 다독거렸다. 도회지 생활로 뽀얗게 변한 뺨을 어루만지다가, 이마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또 쓸어 넘겼다. 그러고서 형의 손을 만져보며 조용히 눈물을 쏟아냈다.

“불쌍한 내 새끼. 에미 잘 못 만나 객지에서 이 무슨 고생인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잠이 든 듯, 형은 숨소리가 하도 깊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부재를 채우느라 손발이 부르텃을 형이지만 어머니 곁에서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아마 나는 그때부터 어머니라는 존재를 영혼의 쉼터로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백발과 시시로 부딪히며 잦은 고빗사위로 삶이 두렵고 외로울 때마다 숨어들고 싶었던 곳이요, 아무도 없는 나의 들판에서 당신은 오롯이 무성한 이파리로 서 있었다.

낮이면 낮대로, 밤이면 밤대로 금쪽같은 시골 시간이다.

도회지에서 내려온 하루가 마지막 잎새 떨어지듯 허무하게 떨어진 지 오래다. 겨우 새벽 두 시인데 새벽닭이 벌써 울어쌓는다.

오전부터 방마다 창호지를 새로 바르느라 부산하였다. 빛바랜 창호지에 물을 뿌려 흥건히 불리고서 문살 하나하나 창호지 찌꺼기를 긁어내다 보니 초겨울 하루해가 금세 저물었던 것이다. 노모의 안방 문 창호지에서 오늘 밤 불빛이 유난히 하얗게 빛나겠다.

창호지로 비치는 불빛만큼 온유하고 따슨 느낌이 또 있을까. 백열등이든 형광등이든 그 불빛을 흥건히 적셔 담아내는 창호지, 나는 불빛 젖은 창호지의 창을 어지간히 좋아한다. 어서 들어와 쉬라는 눈빛 같은 느낌, 밥상을 차려놓고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 듯한 정감, 들어가면 솜이불이 가지런히 깔려 있을 듯한 그런 불빛은 언제나 당신 품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창호지 불빛만 환하게 드러나는 어둠 속 시골집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또 찍곤 한다. 훗날 노모가 세상을 떠나도 노모는 그 창호지 불빛 안에서 나의 눈물을 닦아줄 것이다.

시게 소리가 벽을 올린다.

시골로 내려오면 이처럼 티 없이 맑은 고요에 빠지곤 한다. 시골 밤의 설렘은 이 고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요를 끌어안으면 고요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드물다. 고요를 따라 영성마저 흐른다. 이 고요 가운데 홀로 숨 쉴 수 없어 묵주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과 맞붙은 친구 집 안방 불빛이 울타리 사이로 훤하다. 한 달 전 친구는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친구 집 안방 불빛은 밤새 켜져 있었을 것이다. 내 노모가 그랬듯이 친구 어머니도 오랫동안 잠자리의 불을 끌 수 없을 것이다.

안방에서 마당으로 들려오는 노모의 기침 소리가 새벽을 애잔케 한다. 기침 소리가 애잔할지라도 바로 당신 곁에서 들어줄 수 있으니 그도 얼마나 안심되는 일인가. 노모 홀로 자다가 내뱉는 기침 소리는 얼마나 빈방들을 울리랴. 노모가 홀로 지내온 긴 밤의 시간들이 찬물때의 밀물처럼 밀려오는 듯하다. 노모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데 언제 또 노모의 숨소리조차 이리 들어줄 수 있을까.

은하처럼 퍼졌을 구름 속 별들이 아우성이다.

아, 구름이여!

▲ 이승훈(본명 이재욱) 해드림출판사 대표 ‘테마수필’ 발행인 ‘출판과 문학’ 공동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