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하다

박선희

달리고 싶을 때마다 그가 믿는 건

손이다

손이 발이었던 기억으로 건반 위를 달린다

한 보폭이 날아오를 수 있는 거리는

여든 여덟 개의 희고 검은 계단이다

옥타브를 오르내리는 일은 하늘 너머로 그네를 뛰는 일이지만

달릴 때마다 관절 툭툭 불거진 마디로 악수를 청한다

수직으로 튕겨 오를 때면 파열음으로 미끄러지기 일쑤

빗살무늬로 달려 네발로 기고 싶지만

직립인간이 되었으므로

건반 위의 손 금세 각을 세운다

연어 떼처럼 밀려오는 소리의 물살을 읽으며

삐걱이는 나무계단을 내려오는 저녁

창 밖 계단들은 여전히 가파르다

벼랑 위의 발,

손을 세워 달린다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으며 2014년『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북일보 문학대전 입상, 민들레문학상 대상

2016년 국가 장애인 예술 창작기금 선정

수필집 「아름다운 결핍」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