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충남 홍성 출생 - 육군사관학교 #21기 - 육군제1군수지원사령관 역임 - 예비역 육군소장 / 수필가 - 저서 : 『아들아! 나는 청춘을 군인으로 살았다』(국방진중문고 351호) - 하인리히 하이네 탄신202주년 기념 저작대상 수상(문예춘추) - 조선문학문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회원 - 사단법인 ‘한국고령친화산업진흥회’ 회장 / 이사장(현)

 

수필가 월산 윤 항 중

지나는 길에 늙은이들 너댓 사람이 앉아 한담하는 말을 들었다. "요즘 100세를 산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오래 살아 뭐하려는 것인가?"고 회중에게 묻는 것이었다.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살 필요나 가치, 보람을 느끼지 못할 것이므로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듯하다. 지금 우리나라가 저출산 고령화로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100세로 늘어

나는 시대의 문턱에 들어섰다. 나는 최근에 한국고령친화산업진흥회의 회장 겸 이사장으로

추대되어서 주체적으로 고령화에 관한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인간 생활환경의 변

화와 발전, 의료기술의 발전, 영양상태의 개선등에 힘입어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어느

면에서 보면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

은 이를 축복으로만 받아들이기보다는 고령화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하나의

부담이나 어려운 난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수 백 년 동안 인간 사회는 “인생 칠십(70) 고래희” 라면서 인간의 평균 수명을 60세 정도로 예상하면서 인간이 겨냥하는 삶의 상한선을 60으로 잡고, 거기에 걸맞는 인생설계를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세로 늘어나면서부터 모든 인간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정년이 아닌 정년에 묶여, 인생의 종점이 아닌 종점에 묶여, 모든 생산활동을 비자발적으로 마감하거나 포기해야 할 운명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지금 이 세상에는 옛날 인생설계도를 반영한 정년제도는 있지만, 평균수명이 더 늘어난 40년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고 채워줄 새로운 대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아무 대안 없이 인간의 수명만 늘어난다면 인간 평균 수명 100세 시대는 인간에게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카나다 퀸즈 대학의 크리스틴 오버롤 교수는 말한다. 그는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재앙인가 축복인가” 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이같이 말하고 그는 인간 100세 시대의 리스크(Risk)로, 무전장수, 유병장수, 무업장수, 독거장수를 예로 들고 있다. 쉽게 풀어 말하면 질병, 고독감, 경제적 빈곤에 역할상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오래 사는 것이 재앙이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100세 시대의 리스크를 하나씩 조목조목 따져볼 때 수명이 늘어났다는 사실만을 무조건 환영만 할 수 없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다운 삶의 품위를 상실한 채, 은퇴 후 마지막 몇 십 년 세월을 명줄만 유지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축복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재앙이 될 것이다. 또 인간으로서 자기의 용도가 부정당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엄청난 소외감에서, 노인자살율이 격증하는 것도 고령화가 몰고 오는 인간비극의 한 측면이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바야흐로 오늘의 국가가 지금 안고 있는, 바로 이러한 난제를 풀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시대적 소명에서, 나는 한국고령친화산업진흥회의 창립발기에 나선 것이며,

바로 여기에 한국고령친화산업진흥회가 탄생해야 할 역사적인 당위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과업은, 그간 우리 사회나 다른 나라들에서 노인복지라는 이름하에 행해진, 시혜적 차원의 노인 돕기 사업을 훨씬 넘어서는, 근본적인 과제탐구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낳은 19세기 정상급 시인인 롱펠로는 쉽고 평범한 형식 속에 진리가 번뜩이는 시를 많이 썼는데, 특히 두 아내가 병들어서 죽고 화재로 죽는 등 비극적인 일을 많이 당했으나 매우 긍정적이고 밝은 시를 쓴 시인으로 유명하다. 임종을 앞둔 롱펠로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숱한 역경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당신의 작품에는 진한 인생의 향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 때 롱펠로는 마당의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저 나무가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저 나무는 매우 늙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단맛을 내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그것은 늙은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늘 새순이 돋아나게 해야 하리라. 그래서 선하고 아름다운 탐스런 인생의 열매를 맺게 해야한다. 화단에 꽃 한 송이를 가꾸거나 잡초 한 포기를 뽑아도 아름다운 열매가 될 것이다.

늙은 사과나무의 열매가 많이 달리지 않지만, 당도가 훨씬 높고 맛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 생명을 불태워 맺는 열매들이기 때문에 아마 그럴 것이다. 하는 일이 없어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100년을 살면 뭘해"라고 하겠지만, 할 일을 찾아 할 일이 있는 사람에게는 세월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며 아까운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칼힐티가 했다던 말이 기억난다. “강가에 게으르게 서있는 사람에겐 언제나 시간이 모자라지만, 그러나 흐르는 강물보다도 더 빨리 걸어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보다 많은 시간 여유를 가지고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고령화시대 문제해결의 종착점은 노인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본연의 역할을 본인 스스로가 다하도록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60세 이후의 인생이 인간으로서 용도가 폐기되거나 부정당해야 할 나이가 아님을 알고 있다.

역사에 나타난 통계로 보면, 인간이 남긴 최대의 업적의 35%이상이 60대에서 70대 사이에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이중 23%는 70세에서 80세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80대 이후에 남긴 큰 업적은 6%정도인데, 독일의 문호 괴테는 그의 불후의 명저인 ‘파우스트’를 80에 저술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인간수명 100세 시대를 뚫고 나갈 대안을 부단히 강구한다면, 고령화 문제는 시대의 고민거리나 재앙이 아닌 축복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늙는 것이 아니라 잘 익는 것” 이라고 한다. 고령화는 인간의 폐물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륜의 축적과 성숙을 의미한다. 이래서 서양속담에는 노인 한분을 잃는 것은 도서관 하나를 잃는 것과 같다고 한다. 우리는 다른 서구 국가들보다는 훨씬 더 유리한 가치관으로서 효사상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효가 사회윤리의 기초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교육을 통해 그 중요성이 나날이 약화되고 있는 효의 가치관을 부단히 함양해야 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노인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자녀들이 자기들의 미래상인 집안 어른을 섬기고 받드는 가치관이 그 뿌리를 튼튼히 내릴 때 우리사회의 고령화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세계의 모범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고령화를 우리 사회의 부담이 아닌 우리의 실질적인 자산으로 바꾸는 역사의 창조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고령화가 결코 남의 문제 아닌 자기 자신의 문제임을 깊이 각성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