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 효원수필아카데미, 효원수필문학회 지도교수수필가, 수필집으로 『이카러스의 새로운 비상』(1993), 『발자국을 정리하다』(2010), 『물러나기와 벗어나기』(2015)

알리에 대한 추억

정약수

무하마드 알리, 그는 나와 같은 세대의 인물이다. 그가 1942년생이니까 나보다 불과 한 살이 위일 뿐이다. 그런데 며칠 전, 정확히 말해 2016년 6월 3일, 그가 향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다. 그는 워낙 세계적인 유명 인사라서 그의 죽음과 장례와 추도식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전 세계적으로 뉴스를 탔다. 그의 죽음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나도 무심할 수가 없었다. 내 뇌리 속에도 그에 대한 낡은 추억의 필름이 얼마간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필름을 꺼내어 그것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펼쳐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본명은 캐시어스 클레이였다. 1964년 당시 그가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이었던 소니 리스튼을 꺾고 새로운 세계 챔피언이 되었을 때만 해도 그의 이름은 캐시어스 클레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별명은 ‘떠벌이 클레이’였다. 그만큼 그는 입심으로서도 유명했다.

그때 나는 대학 2학년생이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텔레비전 보급이 일반화되지 않아서 특별히 좀 잘 사는 집에나 간혹 흑백 텔레비전이 있었을 정도였다. 마침 한 후배 여학생집에 흑백 텔레비전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우리들은 중계시간에 맞춰 무조건 그 집으로 우르르 떼를 지어 몰려갔다. 거실에 놓여 있던 텔레비전 앞에 빽빽하게 둘러앉았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 링 밖에서부터 그는 과연 ‘떠벌이 클레이’라는 별명답게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나비 같이 날아서 벌 같이 쏘겠다”고 한 그의 유명한 명언도 이 시합을 앞두고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링에 오른 두 선수의 모습은 대조적이었다. 챔피언인 리스튼은 험상궂은 얼굴에 바위 같이 단단한 근육질 몸매였다. 그에 비해 클레이는 리스튼보다 훨씬 키가 크고, 리치가 길고, 흑인이지만 잘 생긴 외모였다. 당연히 우리 모두는 클레이를 응원했다. 하지만 그가 과연 챔피언인 저 불곰 같은 리스튼의 살인적인 강펀치를 견뎌낼 수 있을까 싶어 내심 조마조마 마음을 졸였다.

막상 시합이 시작되자 과연 클레이는 “나비 같이 날아서 벌 같이 쏘겠다”던 그의 말대로 현란한 풋 워크로 상대방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면서 이따금씩 날카로운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리스튼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데 비해 그의 주먹의 적중률이 높았다. 그러나 챔피언인 리스튼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그는 결국 6회전이 끝나고, 7회전에 들어 스스로 경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클레이의 TKO승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당당하게 세계 헤비급 복싱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 후로 그는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켰다. 이름을 캐시어스 클레이에서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다. ‘클레이’라는 이름이 원래 백인 주인이 흑인 노예에게 내려준 이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또 미국정부의 월남전 징집명령을 거부했다. 그는 “왜 내가 내 민족을 공격하지 않는 이들을 공격해야 하는가. 베트남인들은 나를 ‘깜둥이’라고 무시하지 않았다.”며 정부의 징집명령에 정식으로 맞섰다.

당연히 여러 가지 탄압과 시련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법원에 기소되었고, 챔피언 타이틀도 박탈 당했으며, 그 외에도 살해 위협을 포함한 여러 가지 위협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민중의 챔피언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그 모든 위협과 시련을 이겨내고 1974년 32살의 나이로 당시 챔피언이었던 조지 포먼을 8회에 KO로 눕히고 잃었던 챔피언 벨트를 되찾았다.

복싱선수로서의 알리에 대한 나의 마지막 추억은 1976년 6월에 일본 토쿄에서 벌어졌던 알리와 일본인 프로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끼와의 대결이었다. 이 대결은 당시 동서양의 대결에다, 복싱과 레슬링이라는 이종목 간 대결이라는 전례 없는 경기여서 전 세계인의 관심과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속빈 강정이었다. 왜냐하면 경기 자체가 이종목간 대결이 되어 서로가 정면 대결을 피하면서 이노끼는 시종일관 링에 드러누워 발길질이나 해대는 식이었고, 알리는 알리대로 접근전을 피하면서 링 외곽을 빙빙 돌며 시간을 끌었기 때문이다. 결국 경기는 싱겁게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그래도 알리는 그의 특유한 입심으로는 이노끼를 제압한 셈이었다. 당시 알리는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노끼는 창녀다! 그는 시종일관 드러누워서 돈을 벌었으니까…….”

우리말 속담에 세월을 이기는 항우장사는 없다고 했던가.

그렇게 세기의 챔피언으로서 항상 세계인의 관심과 주목을 받아오던 그도 세월의 힘을 당할 수는 없었던가 보다. 1981년에 은퇴를 선언하고 난 뒤 얼마 후 그가 파킨슨병을 앓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파킨슨병은 뇌중추신경계의 퇴행성 질환으로서 일반적으로 근육의 경직이나 동작의 완만 또는 몸의 떨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복싱으로 인한 후유증이었던가. 아니면 인간과의 대결에서는 항상 챔피언이었던 그도 세월과의 대결에서는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장난이었던가.

그러던 그가 또 한 번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기회가 있었다. 바로 1996년 미국 애틀란타 올림픽 대회에서 그가 마지막 성화 봉송주자로 등장했던 때였다. 젊은 시절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이제는 늙고 병들고 무표정한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떨리는 손으로 성화대에 성화를 점화시켰다. 파킨슨병과 투병을 하면서도 그는 아직도 민중의 챔피언으로서의 그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감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다. 이제 그가 세월의 물결에 떠밀려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소식 앞에 나는 잠시 망연해진다. 그와 내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동시대인으로서 같은 시대를 공유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에게 닥친 불귀의 운명이 언제 내게도 닥쳐올는지 모를 일이다.

조금 앞서고 뒤서는 시차가 있을 따름, 그 누구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그 운명 앞에 나는 다시 한 번 자세를 가다듬는다. 그리고 조용히 속으로 다짐한다. 나는 비록 그처럼 만인의 챔피언은 못되었을망정 내 남은 인생의 챔피언 벨트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