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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에게 쓴 편지
하 재 준
날씨가 몹시 덥다. 지금 밖의 온도가 35,도를 오르내리고 있다. 이 불볕더위는 깊은 밤까지도 지열이 식지 않아 열대야로 잠을 이룰 수 없다. 이 더위가 서민들의 피곤한 삶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지 않는가? 나는 이 더위에 헉헉거리며 깊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하늘의 뭇 별들을 바라본다. 참으로 반짝이는 별들이다. 그러나 별들마저 열대야를 식히려는지 간간이 구름에 잠기기도 한다. 이러한 별들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는듯했다. 그리도 꿈이 푸른데도 일터가 없어 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밤낮으로 고민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헤아려 본다.
기승을 부리는 더위는 금년만이 아니다. 매년 여름마다 찾아와 우리를 힘겹게 한다. 분명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불볕더위는 참기 어려워 우리에게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때로는 노약자들을 열사병으로 죽이기까지 한다. 정말이지 살인마 더위는 인간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매년 여름이 찾아오듯이 젊은 시절에 일자리를 구하는 일도 인생의 한 과정이라 여겨진다. 그러기에 내 젊은 날을 회상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겪어온 젊은 시절은 1950년 6·25 전쟁 후라서 너무도 처참한 폐허와 가난의 비극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할 때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우리나라 GMP가 겨우 50불 정도였다. 그러기에 정부재정의 70%를 외국 원조에 의존해야만 했으니 국민의 삶은 말할 것 없고 국가경제도 그야말로 처참하고 처절한 상황이었다.
현실이 고달프면 고달플수록 꿈은 멀리서 아롱거리기 마련인가 보다. 그러기에 고달픈 인생일수록 꿈을 버릴 수 없고 미래에 대한 꿈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서 분명히 느끼고 깨달은 것이 있다. ‘승리의 반대는 패배가 아니라 포기’라는 사실이다. 포기는 좌절에서 오는 심리요, 좌절의 심리는 의욕을 상실하게 한다. 그러나 패배는 실패에서 비롯된다. 실패란 최선의 노력을 다해도 어찌할 수 없이 일이 잘못되어 그르치는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기에 실패를 찬양하는 명언들이 있지 않는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에디슨)라고 했고 “실패를 감수하는 자만이 성공을 얻는다.”(로버트 F 케네디)라고 했다. 이 말은 실패를 통하여 무한한 성공의 가능성을 배운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핀란드에서는 실패의 날을 제정하여 성공의 날보다. 더 성대히 행사를 치러 실패자에게 의욕과 용기를 북돋아 준다고 한다.
참된 보람을 찾고자 괴로워 한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 보면 분명 행복을 위한 괴로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기에 뼈를 깎는 그 아픔도 능히 참아낼 수 있다. 아니 그 앞에 무릎을 꿇어도 심장이 뛴다. 심장이 뛴다고 말함보다 요동친다함이 정확한 표현이리라. 이것이 꿈이다. 푸른 인생의 꿈이다. 인생을 약동케 하는 푸른 꿈이다.
나는 오늘도 푸른 녹음에 의지하여 지난날의 추억의 사연들을 조용히 되씹어 본다. 내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의 일이다. 그러니까 1960년대 초에 나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어머니! 대학교만은 도저히 고학할 수가 없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객지에서 직장을 구하기가 힘들어 생활비 벌이도 어려운 처진데 매학기 마다 등록금을 마련하여 학업을 계속한다는 것이 너무도 불가능합니다. 그러기에 집으로 내려가고자 합니다.”란 소상한 상황을 내용으로 한 편지었다.
며칠 뒤 어머니로부터 회답이 왔다. “나는 너희들을 바라보면서 논과 밭을 직장으로 삼고 일하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건강하다. (중략) 지금 들녘의 곡식을 바라보면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지금 곡식이 무루 익고 있다. 곡식이 여물 때는 최대의 양분이 필요하다. 그 때에 영양분을 공급 못하면 알곡이 되지 못하고 쭉정이가 된다. 그러면 그 해의 농사는 망치고 만다. 인생도, 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새싹이 잘 나고 무성하게 자라 성장했을지라도 쭉정이가 되면 헛수고 이듯이 너의 인생도 여기서 판가름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다시 힘을 내라. 내 아들아! 너는 할 수 있다. 그간 고달픈 역경을 얼마나 많이 잘 참아왔느냐? 여기서 중단해서야 되겠느냐? 죽기밖에 더할 것이냐. 라는 각오로 힘을 내라. 내 아들아!(이하생략)그 때의 어머니의 격려로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지금은 삼복더위다. 그 기세가 태초의 음양(陰陽)을 변화시킬 듯, 지구 곳곳에서 기상 이변을 일이키고 그것도 부족하여 대지를 불타오르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억만년을 흘러온 자연의 이치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이 순간도 아랑곳없이 탐스러운 결실을 위해 화사한 꽃잎도 지고 오직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해 뜨거운 가슴을 열어 제치고 있다. 푸른 녹음도 보는 이의 시원한 눈길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자신의 결실을 위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이것이 무한한 생명의 질서요, 영원한 가치가 아닌가?
젊은이들이여! 자연의 이치를 깨닫자. 자연은 언제나 광활한 영원한 생명의 질서를 일으키고 있다. 동경의 세계를 속삭이고 있다. 동경은 아름다운 꿈이다. 아름다운 꿈은 언제나 푸르고 싱싱한 사색을 불러 일으킨다. 인간 특히 젊은이로 하여금 의지와 용기를 일으키고 정렬을 불태우게 한다. 이것이 젊음의 자본이요 인생의 최고의 자본이 아닌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고 했다. 이 명언을 가슴 깊이 되새기며 다시 주먹을 불끈 쥐자.
[사진설명]
1986년 한국수필 등단.
노산문학상 수필부문 수상
저서 ‘그 큰 아픔이 사랑이런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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