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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썰어 먹다
-존재의 이유
김미숙(八音)
“가문 좀 썰어 먹읍시다. 아버지!”
그녀는 출가 후 처음으로 찾아온 친정아버지 앞에 칼과 도마를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
“얘야, 그게 무슨 말이냐?”
딸자식이 고기를 썰어 극진히 대접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버지, 배가 고파서 못살겠습니다.”
가문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아버지의 말씀을 받들어 가문이 있는 집으로 시집을 갔다. 비록 가문은 좋지 않아도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는 천박한 집안으로부터 들어온 중매를 아버지는 모두 뿌리쳤던 것이다.
결국 아버지의 뜻을 따랐지만 그녀는 늘 굶주림에 허덕이며 살아왔다. 가문만을 중시하고 가난한 집안에 딸을 시집보낸 아버지는 그제야 딸자식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살면서 각자 지향하는 바가 모두 다르다. 돈, 명예, 권력, 학벌, 사랑, 가문, 건강 등 자신이 원하는 그 무언가를 얻기 위해 질주한다. 그것은 그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내가 문학을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면서 존재하고 싶다.
십여 년이 넘은 세월, 나는 수필과 시를 쓰고 낭송문학을 전파하면서 문학이 돈이 되고 밥이 되는 삶을 꿈꾸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한 내게 문학은 돈이 되지 않았다. 고달프고 힘든 일이었다. 문학 활동과 문단 생활에 젊음을 받쳐 노력했지만 내 삶과 영혼은 언제나 고독하고 궁핍하다.
누가 나더러 문학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등을 떠밀지 않았다. 단지 내가 좋아서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문학이라 할 만한 글 한 편 쓰지 못했다.
“글 쓰세요?”
은행 직원이 송금내역을 확인하며 내게 묻는다. 내가 활동하는 여러 문인 단체의 연회비를 입금하러 왔다가 질문을 받으니 정말 난감하다. 얼른 얼굴을 가리고 싶은 심정이다.
문학을 하면서 들어오는 원고료 수입보다 오히려 활동비 지출이 수십 배로 많다. 부끄럽다. 더군다나 ‘철학의 연장이요, 꽃’이라 말하는 문학을 한답시고 나는 우주적 번뇌와 목마름에 끝없이 허덕이고 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멈출 수는 없다.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빛나는 별 하나 품어 본다.
<약력>
호는 八音. 2003 계간《생각과느낌》수필 등단. 2012《경북일보》詩 데뷔. 한국문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詩,수필) 회원. 한국낭송문학회 사무국장.
2007 대구시 <젊은 예술가 창작 지원금> 수혜. 두류도서관 평생교육원 <낭송문학> 강사 역임. 2014 제1회 전국수필낭송대회 심사위원 역임. 수필집 『정나미』. 계간《영남문학》 편집위원. 대구문학관 문학 도슨트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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