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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정동렬
나이 탓일까?! 내 기억 모두는 젊은 날들이고, 왜 그렇게 밖에 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만 가슴에 가득하다. 좀 더 용기 있고 자신의 감정을 과감하게 밖으로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은 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만 남아 있다, 이것은 내 천성이고 나의 사람됨의 그릇이 그만큼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이러한 내가 이만큼이라도 살아왔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이라고 할만하다
그 중에서도 이십대에 내가 사랑하려한 여인들에 대하여 지금의 생각은 더욱더 나의 부족한 용기와 모자란 자신감을 실감하게 하는 부분들이다
당시에 내 주위에는 내가 손만 내 밀면 가능할 수도 있는 아가씨들, 특히 옥이는 그 대표적이라고 해도 될 만한 상대였다
하지만 주위의 환경은 여러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야만 그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다음 몇 가지가 우선이 아닌가 싶었다
그 처음이 빈부의 관계다.
그런 아가씨가 가난한 우리 집 살림을 살아주겠느냐는 어머님의 반대다,
두 번째가 내 부친께서는 이미 타계한 시기이지만 옥이의 부친은 생존해 계셨으므로 과연 승낙을 하실까 하는 것이다.
세 번째가 나의 친한 친구의 여동생이란 점이다.
이것은 어쩌면 유리한, 또는 불리한 조건이 될 수도 있었다. 그 친구가 결코 나에게 불리한 조언을 부친께 드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여건이 성숙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다음이 연령적 문제다, 지금이라면 하등의 문제될 것도 없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십년정도의 나이 차이는 결코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대략 이런 난제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난제들을 내가 과연 극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내 가슴에 있었고 표면에서 잠재된 문제였다.
공직에 있었던 나는 퇴근 후면 매일저녁이다 싶게 만났다 나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아니면 옥이의 여자친우들과 함께, 물론 둘만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오빠와 동생이 였다, 그리고 그 표현이 언제나 친숙했다. 만일 애정을 고백한 사이라면 그렇게 친숙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내 친구가 주관하고 있는, 재건운동본부에서 시행하는 재건학교 전체 업무의 책임을 맡은 육군 장교 출신이며, 같은 마을 친구의 권유로 이 학교에 강의를 몇 강좌 맡고 있었다. 학교도 우리 마을에 있으므로 가능한 협조를 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이 강의에 옥이의 오빠인 친구도 학교와 오백 미터 이상 떨어진 마을에 살았으나 기꺼이 출강을 했다.
또 있다, 당시에 나는 부친의 상중에 있었다. 요즘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어머님의 명령에 따라서 삼년상을 치뤘다 그리고 출근을 하는 날에는 어쩔 수 없지만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아침과 저녁에 두 차례 부친의 산소에 상복을 입고 다녀왔다 물론 토요일의 경우에는 오후에 한번만 이다, 집에 있을 때는 언재나 상복의 기본인 강목으로 만든 바지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그래야만 갑자기 누군가 문상을 올 경우에 완전한 상주차림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건중학에 종종 문제가 생겼다 시간계획대로 강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그것이다, 출강하는 선생님들 모두는 낮에 직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상 업무 외의 다른 업무나 모임이 있을 때에는 부득하게 결강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은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튼 이런 경우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나에게 먼저 연락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그만큼 인기가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양복으로 옷을 바꿔 입을 시간이 없다, 입은 상복 그대로 출강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튼 계획에 따른 시간은 물론, 다른 선생님의 대강을 하는 경우라도 강의가 끝나면 학생들의 귀가문제가 또 있다, 그래서 강의를 맡은 선생님과 학교책임을 맡은 친구가 각각 다른 방향으로 학생들과 동행을 했다, 왜냐하면 늦은 시간의 하교 길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5-6명 이상이 함께인 경우는 그들끼리만 보내고 집이 멀고 또 동행하는 학생이 적은 경우는 마을 입구까지 동행을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연령층이 15-6에서부터 20세에 가까운 남녀학생들이기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일이였다 이럴 시간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마중하는 옥이,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거의 빠짐없이 기다려 주었다 이래서 우리들은 데이터가 시작되고 그들의 제잘거림을 나는 늘 익숙하게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친숙한 동생들, 그것은 언제나 옥이의 오빠인 내 친구의 그늘에서의 생각이 잠재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몇 개월 아니 한해가 바뀌었을 때였을까?
나는 문득문득 옥이가 내 여자가 돠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아주 짧은 순간의 생각들이고 이런 생각을 가질 때 마다 앞에서의 여러 조건이 옥이와의 관계를 가로막고 또 가로막았다
영원히 내가 사랑하는 동생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이 이르곤 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머리에서 판단과 현실이 그렇고 가슴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이유야 어떠하던 우리는 매일이다 싶이 만났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때는 친구들과 함께였고 간혹은 옥이와 단둘만의 이야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막상 당사자의 이야기는 피했다, 나의 용기 있는 고백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옥이는 나의 용기 있는 말을 얼마나 기대했을까?! 어쩌면 그 당시 내가 했어야 할 한마디 말이 우리의 인생을 얼마든지 바꾸어 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는 끝내 “오빠가 옥이를 정말 사랑 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나는 고의적으로 그 후에도 그런 기회를 피하고 또 피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직장으로 전직을 했다, 그것도 아주 멀리 떠나온 것이다
그 떠나온 동안 고향은 산전벽해가 된 것일까?! 옥이와 함께 거닐던 마을과 마을 사이의 들녘과 우리가 살던 마을, 출강하던 학교는 모두가 없어졌다, 전체가 공단으로 변해있다.
마을들은 어디로 이주해 간 것일까? 옥이는 어디로 결혼하여 간 것일까?
아! 흘러간 세월, 너만이라도 옥이와 나의 사연을 기억해 주리라! 그러나 내 기억에는 옥이는 언제나 이십대 초반의 귀여운 소녀로 남아있다. 그리고 “박인환”시인의 다음과 같은 시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 떨어지고
나뭇잎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의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 중에서
나는 오십 여년의 세월이 흘러간 지금에도 옥이를 잊을 수 없다, 아니 잊지 못하고 있다.
[작가설명]
동아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계간 ‘시와 수필’ 신인상
저서 ‘뜨거운 그늘에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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