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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소리
박영자
며칠 비가 내리더니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예보다. 장마치고는 싱겁게 끝났다. 불청객 태풍도 삼베 잠방이 뭐 빠져 나가 듯 잘 비켜 갔으니 천만 다행이다. 예보는 딱 들어맞아 오늘은 바람 한 자락 불지 않는 찜통더위다. 삼복에는 염소 뿔도 녹아난다더니 더위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나인데도 오늘은 참말 숨이 턱턱 막힌다. 공원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조차 오늘은 짜증스럽다. 집에 에어컨도 없다. 에어컨과 잘 사귀지 못 했으니 차안에서도 웬만해서는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음악회 초대권이 생겼다. 모(某)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음악회니 들을만할 거라며 친구와 동행했다. 자리를 찾아 앉고 보니 VIP석이다. 오늘 같은 찜통더위에도 청주의 문화 수준을 말해주듯 청중이 예술의 전당 그 많은 자리를 가득 메웠다.
성장을 한 여인들이 한 패 몰려 들어오기도 하고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음악회의 예절이 그렇듯 정장차림을 하거나 드레스까지 등장한다. 내 옆자리의 여인은 향수 냄새까지 풍긴다. 천정에서 찬바람이 내 정수리를 정통으로 쏘아댄다. 시원함을 넘어서 추워지기 시작한다. 냉방 한번 원 없이 틀어 댈 모양이다. 반소매 원피스를 입고 갔으니 겉옷 하나쯤 들고 올 걸, 잘 못 한 듯싶다. 두 팔로 가슴을 싸안고 천정에서 쏘아대는 냉방기를 원망스러운 듯 올려다보지만 별 방법이 없다. 우리 앞줄에는 시장님을 비롯한 기관장 들이 앉아 있다.
드디어 막이 열리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저마다의 악기를 들고 앉아 있다. 이제 곧 첫 번째 곡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연주 될 것이다. 검은 연미복의 지휘자가 무대로 걸어 나오자 박수가 터져 나온다. 그런데 내 목구멍이 간질간질하다. 침을 꼴깍 삼켜 본다. 순간 불안한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가고 불길한 조짐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
중요한 회의 중에 갑자기 기침이 나서 애를 먹던 기억이 섬광처럼 지나간다. 그 기억은 두억시니처럼 내 머릿속에 그대로 눌러 앉아 있었단 말인가. 입안의 침을 한껏 모아 꿀꺽 삼켜 본다. 그러나 어쩌랴 지휘자의 지휘봉이 막 움직이는 순간 내 목구멍은 참질 못하고 ‘콜록콜록… ’ 참았던 기침이 개구리 튀어 나오듯 툭 튀어 나오고 말았다. 참았던 기침은 연속해서 따발총처럼 단발 적으로 콜록거렸고 손으로 입을 꼭 막은 채 진땀이 난다. 머리를 무릎에 박고 기침 소리를 감춰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친구는 자기 핸드백을 뒤져 사탕 한 알을 까서 입에 넣어 주고 내 옆의 모르는 여자도 어쩔 줄을 모른다. 목구멍은 가랑잎처럼 바싹 마른 채 얼굴은 불을 담아 붓는다. 무대의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얼마나 화가 났을까. 이런 낭패가 어디 있는가. 모든 관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꽂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가운데 줄에서도 한가운데 자리이니 어떻게 나간단 말인가. 조금 가라앉는 듯 하던 기침은 또다시 시작 된다.
그 때 우리 줄 왼쪽 맨 끝자리에서 물병하나가 물수제비뜨듯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손과 손을 거쳐 릴레이 하듯 내게로 전달되어 온다. 옆자리의 여인이 물병 뚜껑을 열어 내 입에 대 준다. 우선 마시고 볼 일이다. 바싹 마른 내 목구멍에 단비가 내린 것이다. 아니 구원의 생명수다.
살 것 같았다. 구세주가 누구일까. 다들 무대에 눈은 가 있지만 내게 신경들을 쓰고 있는 눈치다. 가까스로 기침은 멎었지만 음악회는 건성이었다. 정말 미안 했다. 모든 일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폐를 끼친 것은 사실이니 민망해서 이를 어쩐단 말인가. 멀찍이 보이는 구세주는 무심한 듯 무대에 시선을 꽂고 있다. 세상에서 숨길 수 없는 것이 기침과 가난과 사랑이라고 하더니 오늘 나는 그것을 절실하게 실감했다.
1920년대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ngler)가 “저는 악장과 악장 사이의 휴지부도 음악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니 저의 음악회에서는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말고 모든 악장의 연주가 끝난 후에 박수를 쳐주십시오.” 라고 청중들에게 부탁했다. 이것이 유럽에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공연장에서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이 새로운 예절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예절 때문에 공연장마다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기침소리였다는 것이다.
특히 유명 연주자가 참여하는 연주회일수록 이 기침소리는 더욱 심해지는데 이를 보고 어떤 의사는 "청중들의 집단 히스테리"라고 진단하기도 했단다. 공연장에 운집한 관중들이 긴장한 상태로 공연에 집중하다 보면 침이 마르고 그로 인해 목이 칼칼해지는데, 중간 악장의 연주가 끝난 후, 한 사람이 기침을 시작하면 너도나도 기침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공연 중에 기침을 하게 될 것 같은 심리적 불안감 때문이라고 한다,
유명 연주자들의 공연 중에 기침으로 일어난 해프닝이 우리뿐 아니라 세계 유명공연장에서도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니 조금은 위로가 된다. 몇 년 전에 정경화 씨가 런던 공연장에서 연주를 시작하려는데 계속해서 기침을 하는 아이를 보고 “저 아이는 좀 더 큰 후에 공연장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 화근이 되어 현지 언론의 뭇매를 맞았단다. 물론 정경화 씨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느 공연장에서는 청중들의 기침을 막기 위하여 사탕을 준비해주기도 했는데, 문제는 사탕 포장을 까는 소리와 입속에서 사탕을 굴리는 소리가 기침소리 못지않게 공연을 방해하니 별로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 일로 기침은 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어 조용해야 할 미사 시간이나 강의 도중에 나를 초긴장하게 만든다. 기관지가 튼튼하지는 못하지만 특별히 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 이제 음악회 가기가 겁난다.
저자 프로필
o 한국수필문학상. 충북문학상. 충북수필문학상 등 다수
o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o 충북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o수필집 『은단말의 봄』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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