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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죽새 울음 울다
김영탁
5월의 초입이다. 유복녀처럼 몰래 태어 난 철쭉이 산야에 불을 댕겨 놓고, 제 몸을 태우더니 차마 밤별의 친구가 될 수 없었던가, 쭈그렁 얼굴로 목젖이 꺾인 채 숨이 가쁘다. 보름을 못다 채운 연분홍 자태는 그렇게 병신년을 외면하고 뒷모습을 보인다. 참으로 야박스럽게도 어느 사이 창밖이 녹음이다. 8순을 넘기면 세월이 살보다 빠르다더니 계절은 번개보다 더 발랐다.
신분이 귀농인지 귀경인지 애매하나 좌우지간 머무는 곳이 산골이다. 6년차로 접어들었는데, 그간 사람도 여럿 사귀었다. 이들은 하는 일이 각각이라 만날 때마다 얻는 것이 많다. 그래서 사는 게 참 재미있다. 진작 옮겨 올걸 후회가 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늦복도 잠깐, 그간 좀 가까이 사귄 토박이 모두가 세상을 떴다. 모두 여덟 분이다. 불과 반10년 사이 그들은 그렇게 태어난 곳을 버리고 저 세상으로 간 것이다. 그러니 이젠 가까이 와서 서툰 나의 농일에 훈수를 두어 주는 이가 한 사람도 없다. 꾸벅 저쪽에서 먼저 인사 하거나, 꾸벅 이쪽에서 먼저 인사 하거나 할 사람이 없다. 참 재미있던 시간이 참 재미없는 시간의 나날로 바뀌었다. 소설 같은 이야기나, 정말 인간계는 그렇게도 빠르게 살같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어제가 5월의 초입이었는데, 오늘이 오월의 마지막 주다. 마음이 자꾸만 초초해 진다. 6월이 미운 것은 아니나 5월 속에 더 머무르고 싶다. 어릴 적 마을 어르신들께 들은 사설로 ‘깐깐오월이오, 미끄덩유월하니, 어정칠월하고, 둥둥팔월이랬다.’ 이런 타령을 들었다. 그 속뜻을 이제야 알겠다.
5월을 잡아 두고 싶은 데는 이유가 있다. 오월의 들녘엔 생명체의 숨소리가 들리고, 농부의 땀 내움이 코끝에 묻어난다.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짝 짓기를 하느라 사랑싸움으로 분주한 숲속풍경도 볼만하다.
한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가는 5월이 서러운 듯, ‘찌죽새’란 놈이 전선에 앉아 아주 슬프게 슬프게 진종일 울어댄다. 그러기를 벌써 여러 날이다. 분명 어제도 그제도 그그제도 그렇게 같은 놈이 울고 있는 것이다. 찌죽새는 멧새의 속명으로 ‘느릅찌기’를 일컫는데, 찌쭉!- 찌죽!- 운다고 해서 우리들은 그저 그렇게 이름 달아 불렀다.
요 며칠 사이로 놈의 울음소리는 한층 구슬프게 들렸다. 기분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모양이다. 나는 철부지 때 산새들에게 죄를 많이 졌는데, 아마도 내 손에 비명으로 간 놈들의 원혼이 나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에 짐짓 찾아와서 울부짖나보다.
새를 좋아하는 나는 한 동한 제법 많은 새를 길렀다 물론 몸집 작은 핀치류다. 그때 새의 우는 소리를 분간하는 지식을 얻었다.
새가 우는 경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경우에 해당된다. 구애, 유희, 동정, 그리고 비명이다. 구애의 표현은 명쾌하고･명랑하여 뜯기에 즐겁고, 무리를 지어 그저 신이 나서 우짖는 유희의 소리는 좀 난잡하나 부담이 없고, 동정을 요할 때는 여러 시간 굶었거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인데, 기운이 달리는 듯 울음소리가 가늘고 좀 길다. 그리고 비명일 때는 자기 소리로 울지를 못한다. 사람으로 치면 괴성을 내지른다. 여기게 경계음 하나를 더 추가할 수가 있다. 위험한 일이 발생하였으니 몸조심하라는 경고음은 아주 짧은 소리를 반복한다.
나는 새를 참 좋아했는데 그 사랑이 지나쳤던 것이다. 좋았으면 그냥 두고 좋아할 일이지 어쩌자고 보는 족족 잡아서 손에 넣고 싶어 했을까?
여름 한철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임무는 소에 풀을 먹이는 일이다. 오후가 되면 또래끼리 모여서 소를 몰고 들녘으로 나간다. 입산하면 소는 소대로 풀을 뜯게하고, 또래는 저네끼리 장난질이다. 긴 회초리 끝에 솔방울을 꽂아 휘-휘- 돌려서 멀리 날려 보내거나, 말 타기를 하거나. 버섯을 따 모으거나 하는데, 나는 새집을 찾는 일에 몰두한다. 어미 새들에겐 공통된 특징이 있다. 먹이를 입에 문 어미 새가 저네 새끼를 찾아 집에 들 때는 경계를 하느라 사람에게 눈치를 뵈지 않으려고 엉뚱한 곳으로 폴락거리다가도 일단 집에 들어 먹이를 주고는 그 자리에서 팽그르르 하늘로 솟는다. 어미 새가 입에 물고 있는 벌레를 보고도 새끼가 얼마나 자랐는가를 알 수 있다. 굵은 벌레를 여러 개 물고 자주 나타나면 새끼가 상당히 자랐다는 뜻이고, 아주 작은 벌레를 물고 조심스레 나타나면 아직 새끼가 어리다는 증거이다.
성충에 가까운 애벌레 여러 마리를 문 어미 새가 더디어 나타난다. 새끼들이 보채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린다. 이쯤이면 녀석들의 보금자리는 내 눈에 쉽게 발각된다. 5마리의 새끼가 그의 성조가 되어 있었다. 여차하면 푸르르 각자가 하늘로 비상할 판이다.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내릴 때를 기다렸다가 새끼 찌죽새 5마리를 옷으로 싸서 들고 집으로 온다. 여러 차례 이런 짓을 했다. 죄받을 일이다.
오늘은 찌죽새가 아침부터 울어댄다. 해질녘에는 비명에 가까운 물음 소리를 냈다. 그것도 내가 앉아 있는 거실 쪽을 보고 우는 시간이 많았다. 가족을 찾는 듯 애잔한 정서가 서리어 있는 울음소리다.
놈이 앉아 우는 장소는 전선줄이다. 텃밭 옆을 가로 질러 전선이 지나는데, 이 전선이 굽어지는 부분이 놈의 고정 좌석이다. 놈은 떨어져 사는 이웃이 듣도록 주둥이를 높이 치켜 올려 울기도 한다. 그때는 호흡을 좀 길게 잡아 처량하게 운다. 놈이 우는 바로 그 옆자리엔 뻐꾸기란 놈이 자주 와서 운다. 한데 묘한 것은 두 놈이 자리를 서로 차지하느라 다투는 일은 절대 없다. 뻐꾸기가 먼저와 자리를 잡으면 찌죽새가 나타나지 않고, 찌죽새가 먼저 와서 울기 시작하면 뻐꾸기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유유상존이오, 슬프면서 슬픔을 달랜다고 했거늘, 서로의 처지를 생각하며 합창으로 울어볼 만도 한데, 두 놈은 협약이라도 한 듯 서로간의 예의를 최대한 지켜준다. 듣기가 싫기로는 뻐꾸기 우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고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위하여 부장품으로 새의 깃털을 사용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일정 기간 지나면 새로 변한다고 믿고 있다. 이는 새가 죽어 인간으로 환생한다는 속설을 뒷받침하는 미신이기도 하다.
어미 새까지 포획한다며 소의 꽁지 털을 뽑아서 올가미를 여러 개 만들어 둥지 입구에 설치해 놓고 가슴을 조이기도 했다. 그런데 둥지 채 집으로 옮겨온 새끼들은 절대 키울 수가 없었다. 파리를 잡아서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어 주면 얼마간 입에 물고 있다가는 배타 버린다. 입을 강제로 벌리고 목구멍 안쪽까지 깊숙이 밀어 넣어도 토해낸다. 이렇듯 새끼들은 굶어죽어도 제 애미가 주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지렁이를 잡아와서 잘게 토막을 내어 먹여도 소용없었다.
산등성이를 넘어온 구름이 겹으로 쌓이자 일식이라도 하듯 사방이 어두컴컴해진다. 아침나절부터 울고 있던 찌죽새가 나를 보자 후루룩 도망간다. ‘맞아! 저놈은 분명 내 손에 간 세끼 찌죽새의 넋일 거야!’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성미이거늘 어찌하여 그토록 잔인한 짓거리를 하였을까.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새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무판대기를 모아 와서 새집 여러 개를 만들어 나뭇가지에 달아 놓는다. 희한한 일도 다 겪었다. 부엌의 화덕이 불기만 닿으면 몸통이 요란스럽게 울어댔다. 알고 봤더니, 느릅찌기란 이름의 산새부부가 밖으로 내뽑아 놓은 싱크대 환기 구멍으로 기어 들어가서 환기통에 집을 지어 새끼를 까놓은 것이다. 하니, 놈들이 성조가 될 때까지 화덕에 불을 집히지 못했다. 이렇듯 약삭빠른 느릅찌기 부부는 천적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한 해 추수를 잘다.
거실의 창틀에 머리를 부딪고 죽은 들새들도 여러 마리 봉지에 싸서 땅에 묻어주었다. 둥지에 침범한 산고양이도 여러 번 쫓아내었다.
찌죽새는 텃새다. 놈과 가까이 친해졌으면 좋으련만 방법이 없다.
‘찌쭉!- 찌죽!-’ 우는 소리가 너무나 슬프게 들린다.
월간 수필문학 추천(1989)
수필문학추천작가회 前회장
서울강남문인협회 前회장
저서: 『가는 歲月 남은 情』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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