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고구마                                  

조미선  

지난 가을에 아주 특별한 선물 하나를 받았다. 단호박 고구마로 속맛이 어찌나 달콤하던지 깊은 산속에 사는 석벌이 나무나 돌 사이에 모아 놓은 질 좋은 꿀맛 같았다. 색감 역시 샛노란 바탕에 단감색이 어울려 보기만 해도 절로 입맛이 당길 정도였다. 그 어떤  선물보다도 값지고 좋은 선물이었다.   나에겐 청각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질녀가 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아름답게 세상을 살아간다. 그가 선천성 청각 장애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연년생의 동생이 옹알이를 할 무렵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현실 앞에서 동생부부는 전국에 용하다는 병원은 끝까지 수소문하여 치료 방법을 모색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수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과는 일반인보다 언어 표현이 더디고 어눌하여 가까이 있는 가족만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일반학교에 진학하기도 했지만 적응이 어려워, 이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전문 장애우 교육기관인 애화학교로 전학했다. 애화학교에서는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 따위에 맞추어 생활하는데 매사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었다. 학업성적이 우수한 것은 물론 성품도 좋아서 그의 곁에는 늘 좋은 친구가 함께했다. 그는 학창시절에 자신의 가치관을 세우고 스스로 관리하기에 이르렀으며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을 키워갔다. 때때로 어려운 일에 직면하여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세상을 멀리 보고 크게 생각한다.’는 좌우명을 생각하며 난제를 극복하곤 했다.   졸업 후에는 학교에서 추천한 기업에 잠시 취직을 하기도 했지만 틈틈이 요리도 배우고 비즈도 익히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나 실마리를 더듬어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질녀는 모델을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의 부모는 처음엔 많은 걱정을 했지만 곧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해를 했다. 질녀는 모델학원에 등록하여 열심히 몸을 만들었다. 근력을 키우기 위한 강렬한 운동과 다이어트를 통해 모델 활동에 필요한 신체조건을 하나씩 갖춰 가기 시작했다. 그의 외모와 세련된 행동은 점차 주변인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상대를 배려하는 몸짓 하나도 예견된 동작에서 나오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웠다.

기대는 작은 행복으로 하나하나 채워지기 시작했다. 조카는 어느 방송사 주관으로 실시했던 ‘도전 슈퍼모델코리아’에 출연했다. 두 달 간의 합숙기간이 끝나고 본 방송이 진행 되던 날  눈부시게 변한 그의 모습에서 나는 잠시 세상사를 잊고 무아의 경지에 빠지게 되었다. 사람의 외모는 꾸미기에 따라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눈을 의심할 정도로 바뀐 그의 모습에서 난 완전히 다른 세상을 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총 열다섯 명이 나와서 회를 거듭할수록 한 사람씩 탈락하는 규정에 따라 그날의 행사는 진행되었다. 수화 통역사가 그의 곁에서 소통을 도와주었고 다른 장애우 역시 그를 적극 후원했다. 그는 최종 열 명이 겨루는 결선에 진출하였는데 방송사에서는 그의 힘들었던 지난 삶에 초점을 맞추어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청각장애우의  희망이 되었고 도전슈퍼모델코리아의 모델이 되어 원하던 일을 맘껏 펼치게 되었다. 그의 도전에는 어떤 장애도 없어 보였다. 장애가 있다면 오직 편견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주변 사람들의 그릇된 생각이 있을뿐….  조카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 같은 청각장애자로 직장도 다니며 농사를 짓는 시골청년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조카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심신이 건장한 젊은이였다. 조카의 옷에 묻은 먼지까지도 관심을 갖는다는 그에게서 나는 새로운 삶의 동력을 느꼈다. 그들은 아직 미래를 약속한 단계는 아니지만 상대를 이해하며 너그러이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 버팀목이 된 것 같아서 나는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앞으로 조카가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따뜻하고 · 행복하고 · 즐겁고 · 평화로운 삶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 전에는 조카의 남자 친구가 보낸 고구마를 선물로 받았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고구마 김치와 고구마 말랭이, 고구마 찜 등 요리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평소 입맛과는 달리 고구마의 맛이 배가 된 것은 단순한 고구마가 아니라 젊은 농부로부터 미래의 희망까지 함께 받아서 그 기운이 음식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조카는 새해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비록 삶이 계획한 대로 순차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생활을 미리하고 대학에 진학함으로써 얻는 망외소득 또한 크리라 생각한다. 딸이 없는 내게 조카는 친딸 이상의 존재다. 나는 조카가 어떤 일을 하든지 항상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세상의 모든 장애우가 언제 어디서나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가 바라는 아름다운 세상이란, 이웃 모두가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포용하며 서로 격려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조미선

사회복지사 · 김수영 문학회 회원 · 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