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떠나는 그때

최종편집 : 2024.4.26 금 20:52

문학	[수필] 떠나는 그때 강남신문 \| kangnamnews@hanmail.net

승인 2017.08.12 12:49:24

떠나는 그때

탁선정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랑할 것 하나 없음에도 속절없이 자랑만 늘어놓았던 그때가 가슴을 더욱더 옥죄어 옵니다. 모진 삶은 길고 길어서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것만큼이나 힘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아픔을 한결같은 미소로 반겨 주는 당신은 정녕 누구인가요? 당신은 나의 속마음을 기억하시는지요? 기억 저 멀리 철부지 어린아이는 없고, 젊은 날의 당신은 어디로 가 있는지 찾지 못해 오늘도 하루를 또 헤매며 찾고 계시나요?

그간 내가 했던 미운 짓을 많이도 원망하며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미안해요, 용서 하세요.’ 소리쳐 울어 보아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내 옆에서 고운 미소 보여주는 당신이 있어서 참 좋아요. 나는 오늘도 당신의 미소를 보려고 목마른 여름 길을 숨 가쁘게 홀로 걷다가 당신께서 나에게 맨 처음 가르쳐 주신 사랑 앞에 감사드립니다. 세상 끝나는 날 신께서는 인간에게 사랑만을 가슴에 안고 떠나 갈 수 있도록 허락한다지요. 이제야 진정한 사랑 가슴에 담아 두어요. 나의 먼 기억에도 늘 웃고만 계시는, 사랑하는 당신을 나의 시간 그릇 속에 담아 두고 오래도록 추억하고 싶어요. 지난 세월은 머릿속 그릇에 담아두고 현재의 시간은 가슴 한 켠에 채워두고 미래의 시간은 상상의 그릇에 넣어서 사랑이란 양념으로 맛을 내고 싶어요.

몇 발자국씩 멀어져 가는데 한순간 아무런 의미도 없는 듯 돌아섰던 내게 원망은 안하고 내 등을 가만히 토닥이며 눈물을 삼키시던 모습이 오히려 미워졌던 기억이 납니다. 바보처럼, 지금도 나를 보면서 웃는 당신을 마주하면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당신을 마주하면 자꾸 흐르는 눈의 강물 때문에 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 등 돌리게 되는 걸 어찌해야 합니까? 등 뒤에서 들리는 거친 숨소리는 송곳이 되어 제 귀를 찌르고, 고개 돌려 보지 못하는 두 눈에는 장맛비 쏟아져 내리듯 콸콸 흘러내립니다. 까만 가슴 숨기고 꽃을 보듯 밝게 웃어도 슬픔에 젖은 텅 빈 가슴은 눈물 에 젖어 아파옵니다. 인간은 모두가 떠돌이 세상살이를 한다지만 나를 위해 홀로 아파하며 밤새우며 우시던 나날의 모습은 너무도 어린 나에게 익숙했던 날이었답니다. 많이 아프고도 힘에 겨웠지요. 어린 내 가슴은 찢어지고 상처투성이로 남겨져 있어요. 그럼에도 그런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끝날 수 없고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이제 당신 품안에서 진정한 사랑 닮아가고 싶습니다. 나로 인해서 애절한 아픔 끌어안고 한평생 고생만 하신 당신, 홀로 지새는 밤에 뼈를 깎고 살을 에는 후회가 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던 당신이었건만 수많은 세월 눈물로 가슴 채우며 사신 나날을 어떻게 보상할 수 있나요. 사랑이라는 말 그 한마디 왜 그 옛날에 하지 못하고 모진말로 더 피멍 들게 했는지 못난이 딸 엎드려 고백하고 통곡을 하네요. 사랑한다는 말 이제야 하게 됩니다. 어리석고 못난 나 때문에 집까지 나오게 된 것도, 외롭고 힘들고 슬픔에 잠긴 세월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많이 늦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자식을 향한 사랑 닻을 내리려 하는 당신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 사랑의 새싹들은 무성하게 쑥쑥 자라나 큰 나무들이 되어 있어요. 이젠 그 그늘에서 쉬어도 되어요. 삶의 주머니 속 다 파서 주신 그래서 살은 퍼석대고 살 겉은 서걱거리는 마른풀이 되어있는 작은 몸, 자식 위해 온몸 던져 지켜온 자식들은 바라볼수록 목젖이 아파옵니다. 검고 무거운 것 다 내려놓고 하얀 소금 꽃만 기억하게 하고 싶습니다. 눈꽃보다 하얀 소금이 꽃처럼 예쁘다고 내게 말해주신 거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르고 또 불러도 목 놓아 끝없이 영원히 불러도 좋은 이름 하나 가슴에 심어놓았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 사랑하는 맘 감사하는 마음 멈출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정말 정말로 떠나시는 때가오면 그때에 나는 무엇을 당신께 드릴 수 있을까요? 엄청난 사랑을 눈물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눈이 좋지 않으셔서 사물을 제대로 판단하시지 못하는 엄마, 허리와 고관절에 무리가 와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 무릎 또한 좋지 않아 인공수술을 기다려야 하는 엄마 생각하면 세상 모든 질서가 흐트러진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헝클어진 질서 속에서 심한 멀미를 하더라도 당신을 가슴에 꼭 안아 드리고 ‘사랑해요.’라는 말을 무한 반복으로 외치고 싶습니다. 사랑해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