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유럽 여행 - 강남신문

최종편집 : 2024.4.28 일 07:44

문학	[수필] 유럽 여행 강남신문 \| kangnamnews@hanmail.net

승인 2017.12.12 14:10:02

유럽 여행

황은미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가던 지난 3월, 나는 지인들과 유럽여행을 떠났다.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의 꿈은 여행을 떠나는 나에게 무한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출발 며칠 전부터 나는 갖가지 옷이며 생필품을 챙겼다. 가급적이면 짐 무게를 줄인다고 하면서도 조바심에 이것저것 넣다보니 가방은 어느새 기준량을 넘어가고 있었다. 여행의 기쁨이 짐에 비례한다면 좋으련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욕심이 앞서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가방을 싸는 일이 즐겁고 여행지를 떠 올리는 것도 즐겁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혹여 어떤 이가 이러한 나의 마음을 훔쳐본다면 그 역시 흐뭇해하며 함께 웃어주지 않을까? 여행은 현지 일정보다는 준비하는 과정이 더 기쁠 수 있다. 몸과 마음이 공감대를 형성하며 감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나는 짐 싸는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는 시점에 조용히 성모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를 올렸다. “천주의 성모여! 여행을 시작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당신께서 함께 하시고 저와 일정을 함께 하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비옵나이다. 아멘.”

설렘 반 걱정 반,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절차를 마친 다음 잠깐의 여유 속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부럽다, 잘 다녀오너라, 다음에는 함께 가자.’는 등의 일상적 통화를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안에서 열 두 시간은 조금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여행의 기대에는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샤를 드골 비행장에 도착해서 현지 경찰관의 호위를 받으며 숙소로 이동했다. 그간 각종 테러로 사회가 흉흉한 탓이었다. 나는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밀려드는 피로에 곧바로 꿀잠에 빠졌다.

아침이 되었다. 하늘은 청명했고 대지의 초록빛 신비는 낯선 이방인에게 적극적으로 환영 인사를 전해 온다. 우리는 저마다 추억을 담으려고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주변에 있던 외국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이 신기했던지 가까이 다가와서 어설픈 한국말과 제스처를 섞어가며 인사를 건네 온다. 이국에서 느끼는 묘한 감정이 일시에 분출된다. 휴게실에서 당일 일정표를 받아들고서야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임을 알게 되었다.

여행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 궁전 관람으로 시작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평소 말로만 듣던 신비스럽고 자연스런 미소를 가진 모나리자 상이 압권이었다. 나폴레옹관에 들어섰을 때는 그간 책으로 또는 인터넷으로만 알아왔던 그의 명언이 살아 숨 쉬며 내 안의 의식을 깨우고 있었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않는 것이며 성공했다고 지나친

기쁨에 도취 되지 않는 것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은 인간이 되는 것이요, 자기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는 것은 신이 되는 것이다.”

프랑스 지중해의 작은 섬 코르시카에서 태어나 세상을 호령했던 작은 거인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베르사유 궁에 관한 기원은 1631년 루이 13세가 조그맣게 수렵용 성을 지은 데서 시작된다. 궁 안의 뜰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소장품의 규모와 화려함에 놀라게 되고 또다시 궁전 뒤로 펼쳐진 정원의 광대함과 정교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현장을 거닐면서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로 돌아가 세상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가며 깊은 회상에 잠겼다. 여행은 첫날과 마지막 날이 인상 깊게 남는다는데 일단 첫날의 여행 감흥이 아주 좋았다.

프랑스 여행을 마친 우리는 유로레일을 이용하여 스위스로 이동했다. 차량으로 움직이는 동안 잠깐씩 잠에 취해 반쯤 감은 눈빛이 힘이 없었지만 여행이 주는 신비감은 그 어느 것과 바꿀 수가 없었다. 스위스는 하얀 화선지에 힘을 주어 단번에 그려간 수묵화처럼 곳곳이 자연과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산악열차로 이동하는 구간에서는 온갖 봄꽃이 경쟁이라도 하듯 잎눈을 터트리고 있었다. 인터라켄의 명물, 융프라우는 새하얀 옷으로 단장하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데 그 자태는 뭇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스위스는 가히 신이 내린 선물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나라, 스위스에는 자연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성실함과 친절함도 함께 있어서 가는 곳마다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단연 패션의 명소답다. 밀라노에서는 각양각색으로 지어진 의상을 걸쳐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밀라노 관광을 마친 우리는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 피사의 사탑, 베네치아 오페라 하우스, 스칼라 극장 등 여러 명소를 관광 했다. 온통 세계 문화유산으로 치장된 로마는 고대와 현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도시 전체가 전시장을 이루듯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사라졌던 도시는 19세기가 되어서야 비밀에 묻혔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 시대의 사회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었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웅장한 절벽과 지상낙원의 대명사 소렌토 해안가를 따라서 걷다보니 답답한 가슴이 확 트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에 도착한 우리는 인스부르크, 하이델베르크 등을 거쳐 벨기에의 브뤼셀까지 여행의 폭을 넓혀갔다. 가는 곳마다 포도주통이 즐비했다. 예술이 숨 쉬는 하이델베르크는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환경에 한번쯤은 살고 싶은 도시였다. 특히 정서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하고 싶은 장소로는 최고인 것 같다. 네카강과 카를테오도르 다리를 걸으며 황태자의 첫 사랑 감정을 느껴본다. 주변 환경에 젖다보니 일상에 쫓기듯 사는 모습이 싫어 어쩌면 이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할 수 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에 아쉬움이 깃든다.

눈 깜짝할 사이에 유럽 몇 개국을 거쳐 여왕의 숨결이 살아있는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영국 왕실에 관계가 깊은 웨스트민스턴 사원과 시민의 공원 하이드파크, 왕실의 위엄과 근위병이 자태를 뽐내는 버킹검 궁전, 컬렉션의 규모가 큰 대영 박물관을 끝으로 영국 여행을 마쳤다. 사람이 여행을 통해 얻는 건 단지 눈만 호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행을 통해 더 많은 생각과 살아가는 지혜도 얻는 것 같다. 현재 살아가는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세월 앞에 고된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도 여행지를 걷는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언젠가는 깔끔하게 정리된 나를 발견하리라 생각한다.

여행에 오는 피로감이 조금 쌓이고, 평소 즐겨 먹었던 고향 음식이 생각나고,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생각나는 걸 보니 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느낌이다. 나는 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그간 보고 듣고 느꼈던 감정을 마음 공원에 하나하나 심었다. 아직은 여리고 작은 나무들일지라도 시간이 흐른 언젠가는 지금의 이 시간을 생각하며 공원을 산책하리라. 모든 나쁜 감정은 다 버리고 예쁜 감정만 생각하며 이 시간을 추억하리라. 여행 기간 동안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주어 새 세상을 바라보게 한 나의 신께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 타국에서의 나의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