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갑자기 내린 비

최종편집 : 2024.4.26 금 20:52

문학	[수필] 갑자기 내린 비 강남신문 \| kangnamnews@hanmail.net

승인 2017.12.12 14:14:33

갑자기 내린 비

백수정

퇴근 후 귀가는 늘 남편 보다 내가 먼저이다. 오늘도 비가 올 것 같은 흐린 하늘을 걱정 하며 집에 도착했다. 습관이 되어버린 날씨 검색이 가랑비를 예보 하고 있다. 저녁식사를 준비 할 때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뛰노는 소리, 엄마들이 모여서 얘기 하는 소리를 들으며 비가 내리고 있지 않음을 예감한다. 퇴근 시간이 정확한 남편을 위하여 식사 준비는 항상 바쁘다. 식사 시간이 조금 늦었다고 남편이 화를 내는 것도 아닌데 나는 남편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식탁에 차려놓고 창밖을 내다보며 기다린다. 남편은 기다리는 아내 때문에 전철을 제 시간에 못 탈까봐 계단을 뛰어 다닌단다. 나는 위험하니까 천천히 다니라고 하니, 이렇게 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는데 어떻게 천천히 다닐 수 있느냐며 한바탕 웃는다.

날씨가 흐린 날에는 요리에 집중하기 보다는 베란다 밖을 힐금거리며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하고 비가 금방이라도 내릴 것 같다. 떠들썩하게 뛰놀던 아이들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하나, 둘씩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산을 안 갖고 간 남편이 걱정스러웠다. 아침에 승용차로 가라고 했지만 체중을 줄여야 한다며 자전거를 고집하며 타고 갔다. 자전거를 역에다 세워놓고 전철로 출근한 남편이다. 나는 차가 집에 있으니 퇴근 시간만 되면 역으로 데리러 가야하나 고민 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승용차로 가도록 얘기를 하게 된다. 퇴근 시간이 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신경이 쓰인다고 남편에게 투덜거린다.

나는 운전 하는걸 싫어한다. 운전 면허증은 30대에 땄지만 운전을 십 년이나 안하다가 지금 새삼 다시 시작하니 불안하고 편리함 보다 짐스럽고 걱정이 더 많아서 될 수 있으면 운전을 안 하고 싶다. 사실 주차에 자신이 없고, 차를 애지중지 하는 남편 때문이기도 하다. 잘못하다 차를 살짝 다치게 할까봐 조바심이 난다. 운전하다 보면 실수 할 수 있다고 얘기 하지만 내 마음은 편치 않다. 그래서 나에게는 차가 짐스러운 존재인 것이다. 남편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운전하기 싫어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역까지 는 데리러 간다. 남편은 비가 오면 자전거 세워놓고 버스타고 올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비 오는 날에 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다 보면 데리러 오지 않는 마누라가 야속하고 미워질 것이다. 그래서 퇴근 시간이 되면 전철 시간 확인하고 비가 올려나 하늘 한번 쳐다보게 된다.

나는 저녁 식사 준비 하던 일을 멈추고 복도로 나가 하늘을 향해 손을 내밀어 보았다. 손바닥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산을 써야 될 정도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몸으로 비를 맞아 봐야 될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내려왔다. 얼굴과 두 손으로 비 줄기를 가늠해본다. 가랑비가 보슬 보슬 내린다. 내 마음이 다급 해졌다. 차타고 나가기에는 너무 늦었고, 자전거를 타고 온다면 이미 비를 맞았을 테고 버스를 탔다면 내가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면 될 것 같았다. 항상 전철 도착 시간은 정확하니까 급하게 집으로 올라오면서 버스 검색을 해보았다. 우산을 들고 정류장까지 가기에 충분할 것 같다. 나는 식사 준비는 뒷전이다.

우산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헐레벌떡 정류장에 도착해서 남편이 타고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결혼해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던 때가 아니라, 서로 연락이 되지는 않지만 퇴근시간이 정확하고 내리는 버스 정류장을 알고 있으니 우산을 들고 시간을 맞춰서 나갔다. 비가 너무 쏟아져서 우산을 받고 있어도 옷이 젖었다. 나는 비를 피하느라 정류장이 보이는 건물 현관에 서서 남편이 버스에서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혹시 내리는 모습을 놓칠까봐 한눈팔지 않고 보고 있었는데 30분이 지나도 남편은 내리지 않고 버스는 계속 지나갔다.

내가 남편을 보지 못한 걸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서둘러 집으로 가면서 혹시나 하고 자꾸 뒤를 돌아보며 걸어갔다. 그런데 조금 멀리서 비를 흠뻑 맞으며 쓸쓸하게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남편이었다. 나는 뛰어 가서 우산을 내밀며, “미안해요. 내가 왜 버스에서 내리는 걸 못 봤을까? 한참을 기다렸는데.” 남편은 웃으면서 “내가 버스에서 잠깐 잠이 드는 바람에 정거장을 지나쳐서 내렸어.” 했다. 남편이 활짝 웃으며 “가랑비 금방 그치는데 뭐 하러 나왔어? 비 좀 맞으면 어때서.” 얘기는 그렇게 하지만 흐뭇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은 비를 흠뻑 맞고도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