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

김정구

기대하던 비는 내리지 않고 아침부터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불쾌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나는 하얀 와이셔츠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집을 나섰다. 경기도 벽제에 있는 서울 승화원으로 가는 동안 몇 대의 영구차가 지나갔다. 누군가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인연 따라 저 세상으로 가는가 보다. 평소에는 운구행렬을 보아도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오늘은 온갖 느낌이 교차한다. 날씨까지 우중충하니 마음은 우울감에 빠진 듯 허허해진다.

20대 중반, 생애 첫 직장으로 우리 회사에 들어와 열과 성을 다해 근무하던 H과장이 몹쓸 병에 걸려 갑자기 하늘나라로 갔다. 그의 나이 이제 서른 셋, 젊어도 너무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 두고 그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영혼의 세상으로 떠나갔다. 그에게는 꽃 같은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여식이 있다. 갓 돌이 지난 딸은 네 번의 인공수정 끝에 얻은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유독 딸 이야기만 나오면 최면에 걸린 듯 숙연해지던 딸 바보였다. 그런 그를 나는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그 역시 나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오직 직장과 가정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다.

장례 예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일련의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눈이 의심스러워 눈을 깜박여 보았고 귀가 의심스러워 귀를 잡아 당겨 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게 사실이었다. 아픈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 사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형이상학의 철학적 관점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고통의 근원은 무엇이며 깨달음이란 어떠한 것인가?’ 알 듯 모를 듯 이어지는 정신세계는 고도의 인생 물음에 답해야 하는 시험지를 받아든 수험생과 같았다. 언제부턴가 마음 밖에선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도 아픈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서울 승화원에는 운구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운구 된 시신의 관이 화장장으로 이동 할 때마다 눈물바다를 이룬다. 한 세상 편안히 살다가 생을 마감하고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사고로 불시에 운명을 달리한, 우리 H과장처럼 요절한 운구행렬이 인생의 마지막 강을 건너고 있었다. 나는 H과장 운구차 곁으로 갔다. 그곳에는 부인을 비롯한 친인척이 벌써 와 있었다. H과장 화장 순서가 되자 그의 친구 여섯이 관을 운반해 화장장으로 옮겼다. 주변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면서 오열하던 부인은 끝내 실신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딸 지민이는 많은 사람이 울자 눈만 멀뚱멀뚱 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슴이 미어 질 것 같다.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위해 절대자에게 향한 마음을 모아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늘나라에 잘 가거라. 부디 그 곳에선 아프지 말고 이승에서 못다 이룬 꿈 이루기 바란다. 남은 부인, 딸 건강 하게 잘 살게 축복해라. 잘 가라. 그리고 나중에 만나자.’라고 기도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 후 다시 서울승화원으로 갔다. 한 시간 여 만에 유골이 나왔다. 한줌도 안 되는 아주 적은 양이다. 우리는 그를 조심스럽게 유골함에 넣었다. 또 한 번 울음바다가 되었다. 생전, 자신의 일에 자신만만하던 호기는 어디에도 없었고 오로지 한 줌 재만 남았다.

종교에서는 내세와 영이 있다지만 그간 우리가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살아가던 그는 이제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허무한 세상,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살아갈까? ‘더 가지려, 더 출세하려, 더 행세하려….’ 다 부질없는 일이다. 우리는 유골함을 들고 양주시청 뒤 불곡산 밑 ‘하늘 안 추모공원 납골당’으로 갔다. 안장을 시켰다. 안장 비용 전부를 회사가 내 줬다. 다들 고마워한다. 하지만 그가 없는 세상, 그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온갖 상념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 동안은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때 조용히 생각나는 한 이야기가 있었다. “조선 후기 거상 임상옥은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기 위해서 곁에 잔을 하나 놓고 교훈으로 삼았다. 계영배라는 잔이었는데,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倚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잔의 7할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넘침을 경계하는 잔’ 이라는 속뜻이 있어 절주배”라고도 한다. 과욕을 하지 말라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생각의 길은 어느덧 인생에 다다랐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뇌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게 남아있는 삶,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에게 존경 받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소개]

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 회원

부동산 개발회사 대표

동두천 소망 봉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