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그리움

김재천

바람이 조금 일었다

시간은 바람 끝을 물고 빠르게 흩어졌다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눈을 감았다

멀어질 수 없는 것 하나가

어둠 속에서 반짝거렸다

우리의 이별은 왜 완벽해지지 않는가?

외로움은 그렇게 나의 내면에서 꿈틀거렸다

별이 따뜻한 날은 빗줄기 틈을 메우고

안개로 흘렀다

물안개가 아무리 짙어도

지워지지 않는 외로움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을 詩로 쓰면 詩가 아니지만

詩를 읽으면 詩가 그리움이 되었다

이제는 해가 지기만 해도

그리움이 데굴데굴 굴렀다

구르는 소리 따라 밤을 굴리며 꼬박 새운

그런 날 아침 詩를 쓰고

추레한 모습 그대로 꽃집에 들러

장미 백 송이를 샀다가 물렀다

화병이 없으므로

그리움은 아직 인상주의였으므로

첫눈이 내리지 않았으므로

무엇보다도 너무 쓸쓸한 날

장미 백 송이는 나에게 과한 것이므로

꽃을 물렀다

[작가소개]

제5회 다형시문학상 수상

한국교총연수원 교수

저서 ‘나비가 되고 싶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