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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늑한 휴식의 뜰을 거닐고 있습니다. 아주 먼 길 돌아 이곳에 왔습니다. 하루길 세상 여행에도 휴게소가 있어 그 날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듯이 인생길에 있어서도 때로는 휴식이 매우 중요 합니다. 어떤 사람은 휴식의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며 인생을 채찍질하듯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밤잠을 통하여 지친 육신의 피로가 풀리는 것처럼 휴식은 영육의 고단함을 풀고 내일을 충전하는 또 다른 힘입니다. 잠시나마 버거운 인생의 봇짐을 내려놓고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며 내일을 설계하며 쉬어갈 수 있어 참 좋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속살거리는 벤치에 걸터앉아 눈꺼풀 위로 내리는 오수를 즐기며 지난날을 회상해 봅니다. 정신없이 바빴던 일상에 휴식을 몹시도 부러워했던 날들이 생각납니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일터로 나가 온종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동동거리던 발걸음이 가게 문을 닫고 나설 즈음엔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밤이슬이 촉촉이 내릴 때입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또 다른 일상이 나를 분주하게 합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청소와 빨랫감들을 주섬주섬 제자리에 정돈하고 나면 시계마저 하루를 접은 원점에서 새로운 날을 향해 초점이 흔들리는 시간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땀에 젖은 일상의 옷을 벗어 벽에 걸고 나만의 공간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것저것 책장을 넘기며 쓰고 생각하는 시간 바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시간은 새벽 3시를 달리고 우주 공간도 깊은 잠에 잠겼습니다. 정말 금 같은 시간을 베고 자는 서너 시간의 잠은 꿀맛이었습니다.
이런 나에게 사람들은 말합니다.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 시간에 잠이나 푹 자면 좋으련만 왜 글을 쓰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하긴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잠을 통해 육신의 피로가 풀리는 것처럼 글은 내 영혼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며 또 다른 세상과 만남이라고 당당해집니다.
전쟁이란 총칼을 마주한 것만 전쟁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이 세상엔 너무 많습니다. 생존이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시작도 끝도 없는 가장 긴 전쟁인지도 모릅니다. 생명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참여하는 전쟁 중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나는 세상과의 타협으로 휴전을 하고 휴식을 얻은 것입니다. 이제는 매일 바쁘게 여닫던 대문을 그렇게 여닫지 않아도 됩니다. 늦잠을 자도 나무라지 않습니다. 꼬리 치는 삽살개를 오래 쓰다듬어 줄 수도 있고 뜰에 핀 꽃들과 눈 맞추며 사색을 즐길 수도 있는 여유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24시간 빼곡히 쌓였던 일상들이 썰물처럼 한꺼번에 밀려간 허전함도 있습니다.
저만치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누비고 다녔던 일터가 바라다보입니다. 지금은 내 것이 아닌 과거 속에 묻혀버린 곳입니다. 가시 같은 시련도 있었고 절벽 같은 절망도 있었지만 세 아이를 무탈하게 길러낸 삶의 바탕이기도 했던 곳이어서 시원하다고 만은 할 수 없는 가슴 한구석이 아린 곳이기도 합니다. 휴식의 공간이 너무 넓다고 느껴질 때마다 생각이 나는 곳이며 생각이 나면 왠지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하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것으로 알차게 공간을 채우며 누리는 삶으로 내 저녁 하늘을 곱게 수놓으며 갈 것입니다.
이 휴식의 공간에서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긴 휴식은 지루하니까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풀리는 대로 새로운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단 한번 밖에 올 수 없는 인생 여행 혼자는 외로울 것 같아 볼펜과 원고지가 동행을 할 것입니다. 그 어떤 투정을 해도 말없이 받아줄 좋은 친구 좋은 의지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있어 남은 여행은 더 좋은 의미가 되리라 믿으며 인생길 굽이굽이 빠진 곳 없이 다 돌아보고 누리며 소풍하듯이 즐거운 여행이 되어 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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