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신문
문학
그곳에 가고 싶다고현숙
강남신문  |  kangnamnew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5.06  22:22:1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나는 시골에서 생활해 본 적이 없다. 태생이 도시 출신이고 양가 친척이 모두 도시에서 살아서 어린 시절에도 방학 때 시골 친척집에서 지내본 경험도 없다. 사정이 이러하고 보니 마음속에는 항상 시골생활에 대한 동경이 남아 있어서 무턱대고 조만간 ‘시골살이’를 할 거라고 장담을 하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난색을 표한다.

수시로 나타나는 벌레들에서부터 잠시도 쉴 수 없는 일과를 나열하며 힘든 일을 거의 하지 않고 자란 내가 ‘감히’ 시골생활을 할 수 있겠냐며 적극적으로 말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갑갑한 아파트를 벗어나 시골로 가기를 동경하는 것은 살아보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있지만 왠지 ‘나’라는 사람이 식물성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서이다.

이른 새벽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몸도 함께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주어진 일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고 힘이 들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일을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일. 그러다가 해가 지는 시간의 하늘을 오랜 시간 행복하게 바라보다가 캄캄한 어둠이 주변을 감싸 안을 때 그 품에 포근하게 안겨 잠드는 일이 참 좋다고 느껴서 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할 수야 있지만, 도시에서의 삶이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부의 간섭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하는 것이기에 고즈넉한 생활은 수시로 깨어지고 만다.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시골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과 실제로 살아내는 것 사이에 얼마나 커다란 차이가 있는지를 몰라서 하는 철없는 말이라고 혀를 차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내 마음에서 원하는 것은 시골에서 살아보는 것이다. 이런 나의 바람은 내가 어떤 곳에 있을 때 행복해지는지를 통해 나타난다. 포항에서 감포로 가는 국도에 있는 주유소를 지인이 운영한다.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 가끔 찾아가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온다. 남편은 사람을 만나러, 나는 공간을 만나러 간다. 해가 지고 나면 주유소 외엔 건물이 없어서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에 싸인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주유소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안고 주유소 뒤편에 있는 논둑 가까운 곳으로 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뭔가 알 수 없는 살아 있는 것들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차분해질 수가 없다. 비 소식이 있을 때 들려오는 개구리들의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또 듣고 싶은 유혹이다. 마침내 비라도 쏟아지면 그야말로 마음 가득 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다. 주유소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빗소리에 반응하는 살아 있는 것들의 움직임을 듣고 보는 일은 가공의 무엇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향연이다. 안타깝게도 생활이 점점 바빠지면서 주유소를 찾는 일은 뜸해졌다.

내가 있는 곳에서 그처럼 충만한 기쁨을 주는 곳을 대체할 공간을 찾아야 하지만 아쉽게도 온전히 자연이 만들어 내는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곳은 없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더니 주변의 카페를 탐색하다가 마침내 마땅한 곳을 찾았다. 집에서도 가깝고 공간도 넓어서 소란하지 않고 무엇보다 이른 시간 문을 여는 것도 좋았다. 수업이 비는 시간이면 노트북을 들고 카페를 찾아가 커피를 시켜놓고 책을 읽거나 수업준비를 한다. 때로는 점심시간을 지나 저녁이 될 때까지 반나절 이상을 보내기도 한다. 백여 평의 공간을 채우는 음악은 요란하지 않은 잔잔함이 있어 좋고 푸근한 인상의 주인아주머니와 갓 볶은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실력이 일품인 바리스타도 좋다. 야외테라스엔 계절에 따라 갖가지 화초와 관엽이 자라고 있어서 실내가 답답하다 여겨질 때는 밖에 나와 있어도 좋다. 지하주차장도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외부에서 손님이 찾아올 때도 부담 없이 이곳으로 약속장소를 정한다. 비가 오는 토요일이면 이곳은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는 곳이 된다.

주말 아침,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한 남편의 손을 잡고 우산을 쓰고 걸어가 늘 앉던 자리에 앉아 빗방울이 창가에 달려드는 것을 보거나 실내에 흐르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비 오는 주말 아침에만 즐길 수 있는 선물이다. 날씨가 화창한 주말에는 할머니가 된 애완견 크리스를 데리고 가서 야외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즐긴다. 때로는 집에 선물로 들어온 음식을 들고 가 바리스타에게 건네주기도 하고 커피가 나올 때 예쁘게 손질된 모습으로 되돌려 받기도 한다. 국도에 있는 주유소에서처럼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을 있어도 조금도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거나 방해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오가고 음악이 바뀌고 하는 순간에도 나를 위한 시간에 집중할 수 있고 개방된 공간에서도 나만의 공간에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곳이다. 무엇보다 수년이 지나도 사람이 바뀌지 않아서 좋다. 살아있는 생명의 소리는 아니지만 자연의 소리를 거슬리지 않는 여린 음악들이 좋다.

가끔 테라스에 나와 앉았을 때 바람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나뭇잎들의 흔들림이 좋고 길을 걸어가는 지인을 큰 소리로 불러 불쑥 초청하는 일도 좋다. 남편이 해외근무를 하면서 오랫동안 주유소를 찾지 못했다. 집 근처의 카페에서 가끔 개구리 울음소리를 그리워한다. 주말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크리스를 데리고 천천히 걸어 야외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문득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던 온전한 어둠이 생각난다. 물론 혼자서는 무서워서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남편이 옆에 있을 때라야만 가능한 일이다. 두어 달 남은 남편의 귀국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남편을 그리워함도 있겠지만, 그와 함께해야만 하는 많은 것들 때문인가.

< 저작권자 © 강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강남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강남신문 (주)강남신문 | 등록번호 : 서울다00714 | 등록일자 : 1988년 12월 2일 | 제호: 강남신문 | 발행인 : 유상용 | 편집인 : 유상용
발행주소 : 06153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68길 6, 5층 (삼성동, 은경빌딩) | 대표전화 : 02-511-5111~3 | 팩스 : 02-545-5466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유상용
Copyright ⓒ 2011 강남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kangnam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