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아들네 손자는 유치원 추첨 응시를 3곳에 했었는데 척 척 3곳에 합격을 했다. 4년 전 딸네 손녀딸은 5곳에 응시했었는데 모두 불합격으로 간신히 예비 후보로 유치원에 갈 수 있었다. 손자는 인성 교육을 위해 불교재단이 운영하는 곳과 영어를 집중 교육하는 곳, 수영장 시설이 있는 체육센터를 놓고 즐거운 고민을 하다가 체육센터 유아반에 등록을 했다. 입학식 다음날 2층에 있는 새싹반 교실로 가기위해 모두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런 난리가 없었다. 낯선 곳에서 엄마하고 헤어지면서 처음에는 한두 명이 울었는데 1초도 되지 않아 완전 아비규환이었다.

선생님과 함께 한 어린이 20명이 울부짖는 모습이 아우슈비츠에 끌려가는 처절한 유태인의 모습이었다. 일주일 동안 서서히 우는 아이들이 줄고 엄마,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고 안정을 찾아갔는데 이 아이들이 그렇게 울던 그 아이들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그 모습이 변해갔다. 이젠 체육관에 가지 말라고 하면 엉엉 우는 시늉을 하며 체육관 가기를 좋아한다. 규모가 큰 체육관에서 마음껏 놀이를 하고 수영을 배운다. 가끔 수영하는 모습이 톡에 올라오는데 물안경을 쓰고 키판을 들고 발차기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대견하다. 혼자서 점심을 잘 먹는지 실내화는 잘 바꿔 신는지 수영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는지 궁금하지만 매일 즐겁게 다녀오는 모습에 아들내외와 우리 부부도 즐겁다.

체육센터에는 등 하원하는 셔틀버스가 있지만 아이 컨디션에 따라 지각 할 때도 있고 꼭 시간은 지켜야 하는 부담이 있어서 손자를 자동차로 픽업을 한다. 왕자님이 따로 없다. 운전자도 그때 마다 지정 당한다. 할아버지가 운전하면 할머니는 시종이 되고 할머니가 운전하면 할아버지가 시종이 된다. 한 사람이 약속이 있어 함께 가지 못하면 짜증을 내고 기사와 시종이 함께 가면 두 개가 왔다며 좋아 한다. 남편과 나는 기꺼이 기사가 되고 시종이 되어 10여 분 오가는 시간 차안에서 간식을 챙기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즐거움을 누린다. 며칠 전 손자를 데리러 가고 있었다. 체육관은 큰길에서 좌회전을 해서 입구로 들어간다. 깜빡이를 켜고 있다가 좌회전 신호에 따라 자동차를 좌회전 하는데 뒤차가 빠른 속도로 내 차 앞으로 좌회전을 하더니 체육관으로 진입을 했다. 너무 깜짝 놀라서 가슴이 두근두근 하고 식은땀이 주르륵 났다. 자동차 경주라면 당연히 1등이었을 것이다. 내 차 속도가 조금만 빨랐어도 조수석과 앞 차 운전석이 부딪쳐서 큰 사고가 날 뻔했다. 화가 나고 황당했다. 앞지르기를 한 차가 비어있는 주차공간이 없어 대기 중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내려 앞 차 문을 두드렸다. “좌회전하는데 그렇게 앞지르기를 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셔요?”라고 했더니 운전석에서 하는 말이 “그래서 사고 났어? 사고 안 났으면 됐지 왜 시비를 붙어” 반말이다. 짙은 색 선글라스, 주렁주렁 귀걸이, 온 팔에 문신을 하고 껌을 딱딱 씹고 있었다. 사과의 말은 고사하고 세상에나 어이가 없었다. 검은색 썬팅으로 동행인이 있는 줄 몰랐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어머니의 표정이 걱정으로 울상이었다. 그 문신 맨은 지체장애 정신장애자였다. 그냥 돌아서는데 마음이 싸 했다.

체육센터가 시립이라서 규모가 크고 성인 수영장도 2곳이고 여러 체육 시설이 있는데 아마도 운동을 하러 온 것 같았다. 손자를 데리고 나오는데, 엄마가 야단을 쳤는지 장애인 주차장에서 문신 맨 아들이 엄마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내 행복을 확인한다고 한다. 슬퍼 보이고 힘들어 보였던 그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왠지 미안하고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손자의 손을 꼭 잡았다.

약력

학여울문학회 회장 역임. 2007년 『수필문학 등단.